황금풍경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39)

 나는 어렸을 때 그리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식모를 괴롭혔다. 나는 게으른 일에는 질색이어서, 그렇기 때문에 게으른 식모를 특히 괴롭혔다. 오케이(お慶)는 게으른 식모였다. 사과 껍질을 깎게 해도, 까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두 번, 세 번씩 손을 멈추고는 ‘야!’ 하고 그 때마다 따끔하게 주의를 주지 않으면 한 손에는 사과,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든 채로 언제까지나 멍하니 있는 것이다. 머리가 좀 모자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엌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나는 자주 보았으나 어린 마음에도 볼품이 없고 이상하게 마음에 거슬려 “야, 오케이, 하루는 짧다구” 라며 어른 흉내를 내며, 지금 생각해도 등줄기가 오싹해질 정도로 버릇없는 말을 던지고는, 그것도 모자라 한 번은 오케이를 불러들여 내 그림책에 실린, 몇 백 명이나 우글대는 사열식 군인들, 말을 타고 있는 자도 있고, 깃발을 들고 있는 자도, 총을 매고 있는 자도 있는데, 그 한 명 한 명의 군인들 모양을 가위로 오려내게 하여, 손재주가 없는 오케이는 아침부터 점심도 굶은 채 저녁 무렵까지 간신히 서른 명 정도, 그것도 대장의 수염 한 쪽을 잘라버리고, 총을 맨 군인 손을 곰처럼 크게 잘라내고, 그리하여 그 때마다 내게 꾸중을 들으며, 여름 무렵이었는데 오케이는 땀을 많이 흘리기에 오려낸 군인들은 모두 오케이의 손에서 묻은 땀 때문에 축축해져, 내가 끝내는 화가 치밀어 올라 오케이를 발로 걷어 찼다. 분명 어깨를 찼을 텐데 오케이는 오른쪽 볼에 손을 대고 갑자기 엎드려 울음을 터뜨리더니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부모한테도 밟힌 적이 없어요. 평생 안 잊겠습니다.” 울먹이듯 한 마디 한 마디 하기에 나는 정말 섬찟했다. 그 외에도 마치 그것이 운명인 양 오케이를 괴롭혔다.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그렇긴 하지만, 나는 무식하고 우둔한 자를 보면 참을 수가 없다.

 재작년, 나는 집에서 쫓겨 하루 밤 사이에 궁핍하게 되어 거리를 떠돌면서 여기저기에 고개를 숙이고 사정을 해가며, 하루 하루를 살아갔고, 별볼일 없는 글재주로 자립할 수 있게 되자 병을 얻었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한여름에 치바 현(縣) 후나바시 쵸(町)에 있는, 시궁창빛 바닷가 옆에 작은 집을 빌려 자취생활을 하며 몸조리를 할 수 있게 되어, 매일 밤 잠옷이 축축해질 정도로 흘러내리는 비지땀과 싸우면서, 그래도 일은 해야 했기에 매일 아침 차가운 한 홉의 우유만이, 그저 그것 만이 묘하게 살아있다는 기쁨으로 느껴지고, 마당 구석에 협죽도(夾竹桃) 꽃이 핀 것을 활활 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내 머리도 여간 질병에 의해 지친 것이 아니었다.

 그 무렵 호구조사를 위해 마흔 정도 된 마르고 작은 몸집의 순경이 현관에서 장부와 내 이름, 그리고 면도도 못한 내 얼굴을 묵묵히 비교하고는, 혹시 당신은……의 도련님 아니십니까? 그렇게 말하는 순경의 말투에는 강한 고향 사투리가 있었기에 “그렇습니다.” 나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순경은 마른 얼굴에 힘껏 웃음을 띄우고는,

 “아이구, 역시 그랬었군요. 잊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래저래 20년 정도 전에, 저는 K에서 마차를 끌고 있었습니다.”

 K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 이름이다.

 “보시다시피,” 나는 웃지도 않고 대답했다. “저도 지금은 밑바닥 신세입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순경은 여전히 즐겁게 웃으며, “소설을 쓰신다면 그건 상당한 출세지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라고 순경은 조금 목소리를 낮추며, “오케이가 항상 도련님에 대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케이?” 순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오케이 말입니다. 잊으셨겠죠. 도련님 댁 하녀를 하고 있던…….”

 생각났다. 아아, 라며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고는, 나는 현관 앞에 쭈그려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서 20년 전, 느려터졌던 한 식모에 대한 내 악행이 하나 둘 뚜렷이 떠올라 안절부절 했다.

 “행복한가요?” 문득 얼굴을 들어 그런 엉뚱한 질문을 한 내 얼굴은, 분명 죄인, 피고, 비굴한 웃음마저 짓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럼요. 그야, 뭐.” 허물없이 그렇게 밝게 대답하고서 순경은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는, “괜찮을까요? 이번에 그 녀석을 데리고 한 번 천천히 인사를 올리러 찾아 뵙겠습니다.”

 나는 순간 너무나도 놀랐다. 아니, 그럴 것까지야, 라고 강하게 거절하고 나는 말할 수 없는 굴욕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순경은 여전히 밝았다.

 “아이가 말이죠, 도련님. 여기 역에서 근무하게 되어서요. 그게 장남입니다. 그리고 아들, 딸, 딸, 그 막내가 여덟 살이 되어 이번에 소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한 시름 놓았지요. 오케이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뭐랄까요. 그 도련님 댁 같은 큰 집에서 예의법도를 배운 사람들은 역시 어딘가 달라서 말이죠.” 조금 얼굴을 붉히며 웃고는, “덕분에 오케이도 당신의 말씀을 항상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휴일에는 꼭 한 번 같이 찾아 뵙겠습니다.”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자, “그럼 오늘은 실례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 나는 일보다도 돈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집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하여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바다로 가려고 현관 문을 드르륵 열자, 밖에 세 명, 유카타를 입은 아버지와 어머니, 빨간 옷을 입은 여자 아이가 그림처럼 아름답게 나란히 서 있었다. 오케이의 가족이다.

 나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지나치게 큰 소리를 질렀다.

 “왔어요? 오늘 전 이제부터 볼 일이 있어 나가봐야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다음 날에 와주세요.”

 오케이는 품위 있는 중년 부인이 되어 있었다. 여덟 살이 된 아이는 식모 당시의 오케이를 많이 닮은 얼굴을 하고 있어, 탁한 눈빛으로 멍하니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슬퍼 오케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도망치듯 강가로 뛰쳐나갔다. 대나무 지팡이로 강가의 잡초들을 이리저리 훑으며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거친 발걸음으로, 무조건 해안을 따라 읍내 쪽으로 똑바로 걸었다. 나는 읍내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저 의미도 없이 활동사진의 간판을 구경하고, 포목상 창문을 바라보기도 하고, 쯧쯧 거리며 혀를 차면서도, 마음 어디 한 구석에서는 졌다, 졌다며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이래서는 안 된다며 심하게 몸을 떨고는 다시 걸어, 30분 정도 그렇게 있었을까. 나는 다시 내 집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닷가로 나갔을 때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보라, 앞에 평화의 그림이 있다. 오케이의 세 가족. 평화롭게 바다에 돌을 서로 던지고는 웃고 있다. 목소리까지 들려온다.

 “상당히,” 순경은 힘껏 돌을 던지고는, “똑똑한 분 같던데. 저 분은 이제 훌륭해지실 거야.”

 “그럼요. 그렇구 말구요.” 오케이도 자랑스러운 듯 경쾌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 분께서는 여렸을 때부터 특별하셨어요. 아랫사람들한테도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셨거든요.”

 나는 선 채로 울고 있었다. 거친 흥분이 눈물로 마치 기분 좋게 녹아버리는 듯했다.

 졌다. 이건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의 승리는 또한 나의 내일부터 있을 출발에도 빛을 비춰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