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禁酒)의 마음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3)

 나는 금주를 하려 하고 있다. 오늘날의 술은 매우 사람을 비굴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옛날에는 이것으로 이른바 호연지기를 키웠다고 하나, 지금은 그저 정신을 경박하게 만들 따름이다. 요즘 나는 술을 지극히 증오하고 있다. 적어도 생각 있는 인물이라면 이제 단호히 술잔을 박살내어야만 한다.

 평소 술을 좋아하는 자, 얼마나 그 정신, 인색하고 치사해지고 있는지, 한 되쯤 되는 배급주 술병을 15등분하여 눈금을 긋고, 매일 정확하게 한 눈금씩 마시고서, 간혹 그걸 넘어서서 두 눈금을 마셨을 때는, 즉 한 눈금만큼 물을 더해 병을 옆으로 껴안고 진동을 가하여 술과 물, 두 놈들로 화합발효를 꾀하는, 정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또한 배급되는 3홉짜리 소주에 주전자 가득 싸구려 차를 더하여, 그 갈색 액체를 작은 잔에 딸아 마시면서, 이 위스키에는 찻잎이 들었구려, 이것 참 재미있군, 이라며 허영심에 가득 찬 말을 하고 호탕하게 웃어 보이지만, 곁에 앉은 마누라는 웃지도 않기에 한층 비참한 꼴이 되고 만다. 또한 옛날에는 저녁 반작 도중 멀리서 친구가 불쑥 찾아온 것을 보면, 아하, 정말 잘 왔다, 마침 술상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참이라네, 아무것도 없지만 한 잔 어떤가, 라는 식이 되어 매우 활력에 넘치곤 했었으나 지금은 매우 그늘졌다.

 “이봐, 그럼 이제 그 한 눈금을 시작할 거니까, 현관을 닫고 문을 잠그고서, 그리고 커튼도 모두 닫아버려요. 사람들이 보고 부러워하면 좀 그럴 테니 말이야.” 그렇다고 한 눈금 짜리 술잔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겠는가 마는 그건 정신상태가 매우 인색하고 치사해져 있으니, 그야말로 바람소리에도 놀라고 바깥에서 나는 발자국 소리에도 일일이 가슴조리며, 왠지 스스로 무척이나 큰 죄라도 저지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을 심히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할 수 없는 공포와 불안과 절망과 분노와 한탄과 기도와, 실로 복잡한 심경으로 방안의 전기를 끈 후 등을 굽히고 찔끔찔끔 핥듯이 마시고 있다.

 “실례합니다.” 라고 현관에서 소리가 들린다.

 “왔다!” 온몸이 긴장되고, 이 술을 빼앗길 수는 없다, 자 이 술병은 찬장에 숨겨, 아직 두 눈금이나 남았다구, 내일과 모레 치야. 이 술잔에도 아직 세 모금 남아있지만, 이건 자기 전에 마실 것이니, 이 술잔은 이대로 놔둬, 건드리지 말고 보자기라도 씌워두게나, 자, 빠뜨린 건 없겠지, 라고 부릅뜬 눈으로 방안을 둘러본 후, 그리고 갑자기 앙큼스런 목소리로,

 “누구시죠?”

 아아, 쓰면서도 넘어올 것만 같다. 인간도 이 지경까지 이르면 이제 끝이다. 호연지기고 나발이고도 없다. “달밤, 눈 내린 아침, 꽃 옆에서라도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내 노니, 모든 흥을 곁들일 수 있구나.” 라고 말하는 옛날 사람들의 우아한 심경을 조금은 배워 반성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렇게까지 해가며 술을 마시고 싶은가. 붉게 물든 석양을 받으며, 땀은 폭포수처럼 흘리고 있는 수염 난 훌륭한 어른들이 호프집 앞에 예의 바르게 줄을 서서, 그리고 가끔 조심스럽게 고개를 기웃 거리며 호프집 둥근 창으로 안쪽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짓는다. 좀처럼 순번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안쪽도 또한 마치 감자라도 씻는 것처럼 혼잡하다. 팔꿈치와 팔꿈치를 서로 부딪히고, 서로 옆에 앉은 손님을 견제해가며 질세라 하고 큰소리를 지르면서, 이봐, 맥주를 빨리, 이부아, 미엑주, 라고 동북지방 사투리를 쓰는 자도 있어, 왁자 지껄, 간신히 가득 찬 맥주를 받고는 거의 정신 없이 들이마시자마자, 실례, 라는 말도 없이 검은 눈빛을 반짝이는 다음 손님이 자기를 의자에서 밀어내고 끼어들어오는 것이다. 즉, 찍소리도 못하고 퇴장해야만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그래, 다시 한 번, 이라며 문밖의 장사진 끄트머리에 붙어 순서를 기다린다. 이런 일을 서너 번 되풀이 하고 나서 심신 모두 지치면, 아아, 잘 마셨다, 하고 힘없이 중얼거리면서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국내에 술이 절대 그리 극도로 부족한 건 아닌 것 같다. 마시는 사람들이 요즘 늘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부족해졌다는 소문이 나자 지금까지 술을 마신 적도 없는 사람들까지, 그래, 그렇다면 어디 한 번 그 술이라는 것을 마셔두자, 무엇이든 경험해보지 않으면 손해다, 해보자, 라는 식의 어딜 보나 소인배적인 정신으로 배급되는 술은 우선 받아 챙기고, 호프집 같은 곳에도 한 번 쳐들어가, 혼잡 속을 누벼보고 싶다, 무슨 일이든 지면 안 된다, 오뎅집도 어디 한 번 가보자, 카페라는 곳도 들은 적이 있는데, 대체 어떤 곳인가, 이런 때일수록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라는 시시한 향상심에서 비롯하여 어느새 어엿한 술주정뱅이가 되어, 돈이 없을 때는 한 눈금의 술도 아끼고, 찻잎이 뜬 양주를 즐겨 마시며, 더 이상 그만둘 수 없게 되고 만 사람들도 상당히 많지 않을까 한다. 여하튼 소인배들은 구제불능이다.

 간혹 술집에 가보아도 실로 기분 나쁜 일들이 많다. 손님들의 얄팍한 허영심과 비굴함, 가게 주인의 오만, 탐욕, 아아, 더 이상 술은 싫다며 나는 갈 때마다 술을 끊을 결심을 하건만, 때가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도 발길을 끊을 수 없다.

 가게에 들어선다. “어서 오세요” 라는 말을 들으며 가게 사람에게 웃는 얼굴로 환대 받는 것은 옛날 일이다. 지금은 손님 쪽에서 웃어 보인다. “안녕하세요” 라고 손님 쪽에서 가게 주인이나 웨이트리스에게 만면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하고, 그리고는 묵살당하는 일이 관례가 되어 있다. 정성껏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하고 가게 주인을 “사장님”이라 부르며 생명보험을 권하러 온 것처럼 보이는 신사도 있으나, 이도 또한 술을 마시러 온 손님이며, 그리고 역시 묵살당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나아가 치밀한 놈은 들어서자마자 가게 카운터 위에 놓여진 화분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이러면 안되지, 조금 물을 줘야겠어.” 라고 주인이 들리도록 중얼거리고는 화장실에서 물을 두 손으로 퍼와서는 탁, 탁, 하고 화분에 뿌린다. 몸동작만 거창하고 화분에 뿌려지는 물은 불과 두 세 방울이다. 주머니에서 가위를 꺼내 들고 싹뚝싹뚝 가지를 치고 다듬는다. 꽃집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의외로 은행 중역이거나 한다. 가게 주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손수 가위를 가지고 오는 것이겠지만, 고생한 보람도 없이 역시 주인한테 묵살 당한다. 무게 있는 연기도 화려한 재주도, 이런 수 저런 수를 써 보아도 무엇 하나 도움이 안 된다. 하나같이 차갑게 묵살당한다. 그러나 손님들도 그 묵살에 질세라 어떻게 해서든 한 병이라도 더 마시고 싶은 나머지, 하다못해 자신이 가게 사람도 아닌데도 가게로 누군가가 들어오면 일일이 “어서 오세여어” 하고 소리쳐, 또 누군가가 나가면 꼭 “감사합니다” 하고 소리치는 것이다. 이는 분명 정신착란, 미친 짓이다. 실로 딱하기 이를 데 없다. 주인은 홀로 침착하게,

 “오늘은 도미의 소금구이가 있어.” 라고 중얼거린다.

 곧바로 한 청년은 탁자를 두드리며,

 “이거 고맙군! 제일 좋아하는 건데, 그것 참 잘 됐다.” 속으로는 조금도 좋은 일이 아니다. 참 비싸겠지, 난 지금까지 도미의 소금구이 같은 건 먹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크게 기뻐하는 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슴 아픈 일이로다, 제기랄! “도미의 소금구이라고 들으면 난 환장한다구.”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다른 손님도 여기서 질 수는 없다. 너도 나도 하면서 그 한 접시 2엔 하는 도미의 소금구이를 주문한다. 이걸로 일단 한 병은 더 마실 수 있다. 그러나 가게 주인 인심은 무자비하다. 걸걸한 목소리로,

 “돼지고기 삶은 것도 있어.”

 “삶은 돼지고기라?” 노신사는 빙그레 웃으며, “이걸 기다리고 있었다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매우 난처하다. 노신사는 이빨이 나빠 돼지고기는 전혀 못 씹었던 것이다.

 “다음은 돼지고기 삶은 거라. 나쁘지 않군. 주인 어른, 역시 뭘 좀 아시는구만.” 이라며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어리석은 아부를 말하며 여기서 질세라 다른 손님들도 그 한 접시 2엔이나 하는 수상쩍은 찜을 주문한다. 그러나 이쯤에서 주머니 사정이 불안해져 낙오하는 자들도 있다.

 “전, 삶은 돼지고기, 됐어요.” 라고 심히 의기소침하여 6호 활자 정도 될법한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고서 일어나, “얼마예요?” 라고 한다.

 다른 손님들은 이 불쌍한 패배자의 퇴진을 힐끔 쳐다보고는, 바보 같은 우월감으로 흥분한 듯,

 “아아, 오늘은 정말 잘 먹었군. 주인 어른, 뭐 또 다른 맛있는 것 없나. 부탁이네, 한 접시 더.” 라고 정신 나간 소리까지 서슴지 않는다. 술을 마시러 왔는지, 먹을 것을 찾아 왔는지 잊게 되는 것 같다.

 그야말로 술은 요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