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6)

 “전쟁이 끝나자 이번에는 또 갑자기 무슨무슨 주의다, 이런저런 주의다 하면서 한심하게 소란을 떨며 연설 같은 짓도 하고 있지만, 저는 어딘지 모르게 믿을 수가 없어요. 주의도 사상도 쥐뿔도 필요 없지요. 남자는 거짓말을 그만두고, 여자는 욕심을 버린다면, 그걸로 이미 일본이 새롭게 건설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집이 불에 타, 츠가루(津輕)에 있는 생가에 얹혀 살게 되어, 우울하고 재미가 없어, 어느날 찾아온 초등학교 동창생이며, 이제 이 동네의 명예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이와 같은 화풀이 섞인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명예직은 웃으며,

 “예,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좀 반대가 아닌가요? 남자가 욕심을 버리고 여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죠.” 라며 의외로 단언한다.

 나는 당황하여,

 “그건 또 왜죠?”

 “그야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겠으나, 하지만 여자의 거짓말은 굉장합니다. 저는 올해 정월, 아니, 정말 소름 끼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완전히 여자라는 존재를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마누라를 봐도, 저런 지저분한 여편네지만 혹시 어딘가에 다른 남자라도 만들어 놓지나 않을까 할 정도입니다. 아니, 그건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 라며 웃지도 않고 말하고는, 다음과 같은 시골의 비화를 말해주었다. 이하 ‘나’ 라는 것은 그 해 37세였던 명예직 자신을 가리킨다.

 

 지금이니까 이런 말도 밝힐 수 있습니다만, 당시는 그야말로 극비사건으로서 이 마을에서 이 사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이곳 경찰서장과 (이 서장님은 그로부터 바로 전임되었습니다만,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저 정도였습니다.

 그 해 정월은, 일본 전국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만, 이 지방도 몇 년만의 폭설 때문에 거리에 걸려있는 전깃줄까지 손이 닿을 정도로 눈이 쌓여, 가로수는 부러지고 납작하게 부서진 집들도 있어, 거의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와도 같은 피해로, 연일 눈보라가 몰아쳐 이 주변 일대의 교통이 이십 일 동안이나 완전히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그 무렵에 일어난 일입니다.

 밤 여덟시를 조금 넘었을 때였을까요. 제가 큰 딸아이에게 산수를 가르쳐주고 있자, 마치 눈사람과도 같은 몰골로 경찰서장이 나타났습니다.

 왠지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들어오라고 해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 서장은 술을 매우 좋아하여 저와는 좋은 술친구였으며, 본래부터 허름 없는 사이였는데, 그날 밤은 예전 같지 않게 서먹서먹한 모습이었으며, 입구에 선 채로 우물주물 하더니,

 “아니, 오늘은,” 하고 말하고서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라고 굳은 결심이라도 한듯한 투로 말했습니다. 이건 정말 예삿일이 아니다 싶어 저도 긴장했습니다.

 저는 ‘게다’를 신고 입구까지 나아가 말없이 닭 우리 쪽으로 안내했습니다. 병아리의 보온을 위해 그 작은 집에는 화로가 놓여있습니다. 저희들은 어두컴컴한 닭 우리 속으로 조용히 들어갔습니다. 저희들이 들어가도 닭들이 조금도 소란을 피우지 않았을 정도로, 그만큼 조심스럽게 들어갔던 것입니다.

 “절대 비밀로 해주세요. 도주(逃走) 사건입니다” 라고 서장이 말한다.

 경찰 유치장에서 누가 도망쳤나 보다, 처음에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묵묵히 다음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아마 이 마을에서는 전례가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 친척분들 중에 ‘케이고(圭吾)’ 씨라고 있죠? 입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하지만 그 녀석은.” 하고 거의 정신없이 말을 이었습니다. “그 녀석은 분명히 제가 아오모리(靑森) 현에 있는 군부대 입구까지 배웅해주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쪽 헌병대에 의하면, 그는 처음부터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보통 헌병이 이쪽으로 수사하러 오지만, 이런 폭설 때문에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그래서 우선 비공개 수사를 요청해왔습니다. 그 일로 저는 당신께 드릴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케이고’ 라는 사내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은 동경에 주로 계셨으니 전혀 모르시겠고, 또한 지금 이런 세상이 되어, 무엇을 밝혀도 지장이 없을 테니, 어디에 사는 누구라고 분명히 밝혀도 되긴 하겠지만, 그러나 딱히 미담(美談)도 아니기에, 아무래도 그 사람의 신상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저로서는 매우 가슴이 아픕니다. 그저 막연하게 ‘케이고’ 라고만 기억해두세요. 제 먼 친척입니다. 장가든지 얼마 안된 젊은 농사꾼입니다.

 그 녀석한테 입영영장이 나왔지만, 전혀 기차도 타본 적이 없는 촌놈이었기에 제가 아오모리에 있는 군부대 입구까지 배웅해주었건만, 글쎄 입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단 부대 문을 지나고는 곧바로 휙 도망친 걸까요.

 서장의 부탁이란 아무튼 그 케이고가 도망쳤다 해도 달리 갈 곳도 없다. 분명 이 눈보라 속을 며칠이 걸리든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죽진 않는다. 반드시 집으로 돌아온다. 무엇보다 그 새색시는 그 녀석한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미인이니 반드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당신께 부탁이 있다. 당신은 그들의 중매를 섰었고, 또한 예전부터 그들 부부는 당신을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 아니, 농담이 아닙니다. 진지한 말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밤 당신은 수고스럽지만 그 쪽 집으로 가서 새색시에게 잘 설득해주고, 절대 나쁘게는 하지 않을 테니, 만약 케이고가 집으로 돌아오면 몰래 당신께 알려주도록 단단히 일러주세요. 이 2, 3일 내에 케이고를 찾는다면, 저는 케이고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도록 조치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폭설로 교통기관이 엉망이니 만큼, 저는 그 녀석이 입대일자가 늦은 이유를, 어떻게든 잘 보고할 생각입니다. 탈영병이 나왔다면 이 마을 전체에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이 마을의 명예를 위해서 좀 수고스러우시겠으나 부탁 드립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저와 서장은 함께 눈보라 속을 뚫고 그 쪽 집으로 향했습니다. 꽤 먼 곳에 있거든요. 아무래도 한평생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 같은 병역면제 5급짜리가 제국군인 부인으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가르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가 있죠.

 그 쪽 집 앞에서 서장과 말없이 헤어지고, 저는 그 집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동경에 오래 계셨다고 해도, 역시 이 고장 출신이니, 이쪽 농가의 구조는 알고 계시겠죠? 마당으로 들어서면 왼쪽은 마구간이고 오른쪽은 거실과 부엌 겸용인 마루가 깔린 방이며 큰 화로가 있어, 그저 케이고의 집도 대충 그런 식입니다.

 새색시는 아직까지 깨어있어 화롯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허어, 기특하군. 우리 여편네는 저녁을 쳐먹으면 곧바로 갓난애기와 함께 잠이 들어, 버렁버렁 코를 골고 그만이지. 밤을 샌다거나 그런 일은 절대 없거든. 너는 과연 출정군인의 부인답게 아주 기특하고 신통하다.” 라고, 되지도 않는 칭찬을 하며 외투를 벗고는, 본래 예의치레 같은 건 필요 없는 친척집이니 만큼, 바로 거실로 들어서서 화로 옆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어머님은 주무셨나?” 하고 물었습니다.

 케이고에게는 앞이 안 보이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어므님은 주무시믄서 꿈을 꾸시는 걸 제일 좋아허시지유.” 라고 새색시는 바느질을 하면서 조금 웃으며 대답합니다.

 “음. 그러실지도 모르지. 너도 고생이 많지? 하지만 지금 세상은 일본에서 행복한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걸세.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으면 돼.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면 나한테 의논하러 와도 되고 말이야.  그렇지?”

 “고맙구만유. 오늘은 또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래유? 늦었구마니라.”

 “나 말이야? 아니, 아무 데도 안 갔어. 곧바로 이리로 왔지.”

 아무래도 저는 잔꾀 부리는 것을 싫어해서 말이죠. 아니, 잔꾀를 부리려 해도 귀찮아서 도무지 안 되는 성미이기에, 조금 불편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말하곤 합니다. 그 때문에 생각지도 않는 골치 아픈 일이 생긴 적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잔꾀를 부려 성공해도 오래 가진 않을 것 같더군요.

 그 때도 저는 하지도 못하는 잔재주를 부려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이리로 왔다”고 사실대로 말했으나, 새색시는 특별히 그 점이 마음에 걸리지도 않는 듯, 새 장작 두 개를 화로에 집어넣고는 다시 바느질을 계속합니다.

 이상한 걸 묻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이나 저나 소학교 동창이니, 서로 동갑인 서른 일곱, 아니, 이제 2, 3주 후면 소화 21년이 되니 서른 여덟. 그런데 어떤가요? 이 나이가 되어도 역시 ‘색기’가 있는 걸까요. 아니, 농담이 아니라, 저는 언젠가 누구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설마 제가 이렇게 머리는 벗어지고 아이가 넷이나 있어, 손 가죽도 이렇게 두껍고 금도 많이 갔으며 거칠어진, 이런 손으로 여인의 부드러운 옷자락이라도 만진다면 손 가죽에 걸려 안되겠지요. 이런 몰골을 하고서 사랑이나 연애다 말할 용기는 과연 없습니다만, 그러나 ‘색기’란 뜻밖의 일이라, 조금 아름다운 여인과 단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하면 왠지 묘한 느낌이 들게 될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아니,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조금 색기가 강한지도 모릅니다. 사실 저는 이런 지저분한 늙은이가 되고 말았으면서도 대부분의 여인과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할 수 없거든요. 설마 제가 그 상대방을 좋아한다거나, 호감을 받는다, 그런 바보 같은 일은 상상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거북한 거죠. 아무래도 남자들끼리 대화하는 것처럼 깔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가슴 속 어딘가에 묘한 응어리가 생기는 것 같아 안됩니다. 그건 역시 제 ‘색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만, 어떤가요? 그러나 또한 제게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게 만드는 여인도 간혹 있습니다. 여든 먹은 할머니라거나, 다섯 살짜리 꼬마나, 그건 문제가 안되지만, 아직 한창인 여인들도, 그것도 상당한 미인이면서 전혀 저를 거북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저도 담백하고 매우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있을 수 있는, 그런 여인도 간혹 있습니다. 그건 대체 어떤 것일까요? 저는 요즘 다시 뭐가 뭔지 모르게 되었습니다만, 예전에는 대충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로 하여금 거북하지 않게 한다는 건, 즉 내게 조금도 색기를 느끼지 않게끔 한다는 뜻이니, 분명 그 여인의 정신이 고결하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응어리를 느끼지 않는 여인은, 설마 누가 누구를 좋아하느니 하는 분명한 마음은 아니겠습니다만, 자신도 모르는, 막연하고 희미한 색기가 있어, 그것이 상대방에게 얽혀와서 이상하게 상대를 거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말을 나눌 때 침착하게 만들지 않는 여인은 헤픈,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색기가 있는 여인으로서 대수롭지 않은 사람이며, 그리하여 태연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인을 마음이 반듯한 사람으로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케이고의 색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지 모르지만, 제게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전혀 조금도 응어리를 느끼지 않게끔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지금은 이제 지주니 소작농이니 하는 것들은 없어졌습니다만, 본래 그 색시는 저희 집 대대로 내려오는 소작농의 딸로서, 어렸을 때부터 잠시 이렇게 깊은 사색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농사꾼들로서는 드물게 몸매가 가냘프고 피부도 희었으며, 어른이 되면서 얼굴이 조금 변하여, 나쁜 말로 하자면 주걱턱처럼 되기도 했습니다만, 그러나 사람들도 상당한 미인이라고 하여 말수도 적고 부지런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저한테 그 응어리를 느끼지 않게끔 하는 면이 마음에 들어, 저는 친척인 케이고와 맺어지게 해준 겁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는 하나, 저와 그 색시는 남남이며, 저도 아직 힘 빠진 노인도 아니고, 하물며 상대방은 젊은 미인인데다가 남편은 군대에 가 있는데, 밤늦게 찾아가 그렇게 단둘이 화롯가에서 대화를 나눈다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그리 듣기에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저는 그 색시에 대해서만은 전혀 이상한 생각도 들지 않고, 그리고 그건 그 여인의 인격이 고결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기에 전혀 거리낌없이 편안하게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말이다, 오늘은 너한테 중요한 부탁이 있어서 왔어.”

 “네에.” 라고 말하고는, 새색시는 바느질 하던 손을 멈추고 멍하니 제 얼굴을 지켜봅니다.

 “아니, 바느질을 하면서라도 좋아. 침착하게 들어주게. 이건 나라를 위해서, 라기 보다는 우리 고을을 위해, 아니, 저희들 가정을 위해 꼭 들어주게나. 무엇보다 케이고 자신을 위해, 또한 너를 위해, 또한 어머님을 위해, 그리고 너희들의 조상님, 자손을 위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번 내 부탁만은 들어주지 않으면 안되네.”

 “대체 뭔 말씀인데 그래유?” 새색시는 바느질을 계속하면 조용히 말했습니다. 별로 걱정스러운 표정도 아닙니다.

 “놀라면 안돼. 말은 이렇게 하나 누구나 놀라겠지만, 사실은 말이다, 방금 전 경찰의 서장님이 내 집에 오셔서는,” 하고 저는 잔꾀도 꾸밈도 아무 것도 없이 서장으로부터 들은 일을 그대로 전하고서, “이봐, 케이고도 큰 일을 저질렀지만, 그러나 누구나 한 번은 순간적으로 이상한 마음이 들 때가, 이상한 마음이 생길 때가 있어, 묘한 잘못을 저지르고 싶어지기도 하네. 이건 홍역과도 같은 것이라서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마음의 독을 한 번은 바깥으로 뿜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은 거야. 그러니까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그 잘못을 더 이상 크게 만들지 않는 것이 너나 나의 따뜻한 마음씨가 아닐까? 서장님도 절대 나쁘게는 하지 않는다고 하네. 그는 사람을 속이거나 하는 양반이 아니야. 이 마을의 명예를 위해 이 2, 3일 중에 케이고를 찾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잘 조치해서 윗 분들로부터 꾸중을 듣지 않게끔 한다고 말씀 하셔. 서장이나 나나 입을 다물고 있어. 이 마을 사람들 누구에게도 절대로 말하지 않을 걸세. 정말 부탁하네. 분명 네가 있는 곳으로 돌아올 거야. 돌아오면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어. 곧바로 내게 알려주길 바라네. 그것이 무엇보다도 케이고를 위해, 너를 위해, 어머님을 위해, 조상님과 자손을 위한 일이야.”

 색시는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도 않고 바느질을 하면서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그 때 어깨를 들어올리며 한 숨을 쉬고는,

 “어쩌면 바보 같을 수가.” 라고 말하고는 왼손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너도 마음이 아프겠지. 그건 충분히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너보다도 몇 배나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기에, 너도 견뎌주게나. 꼭 반드시 케이고가 돌아오면 내가 있는 곳으로 알려주게. 부탁하네! 나는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만은, 자, 이렇게 내가 고개 숙여 네게 부탁한다.”

 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눈보라소리에 섞여, 마구간 쪽에서 작은 기침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고개를 들어,

 “지금 너, 기침 했나?”

 “아아뉴.” 색시는 제 얼굴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조용히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기침은 누가 낸 거지? 넌 안 들렸어?”

 “글쎄유. 안 들렸구만유.” 라고 말하고는 미소를 띄웠습니다.

 저는 그 때 왠지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처럼 오싹했습니다.

 “와 있는 게 아니야? 이봐, 너, 속이면 안돼. 케이고는 저 마구간에 있는 게 아니냐.”

 저의 소란 떠는 모습이 너무 이상하게 보였는지 색시는 무릎 위에 있던 바느질거리를 옆으로 치우고는, 얼굴을 무릎에 누르는 듯이 해가며 ‘오호호호’ 하고 웃어댔습니다. 잠시 후 얼굴을 들고는 웃음을 억지로 참는 듯이 입술을 깨물고, 마치 목욕탕에서 나왔을 때처럼 홍조를 띈 얼굴을 들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넘겨올리며, 그리고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제 쪽을 똑바로 돌아보더니,

 “안심하셔유. 저도 바보가 아니구먼유. 오면 왔다고 틀림없이 전해드리러 가겠구만이라. 그 땐 정말 잘 부탁하겠구만유.”

 “어, 그래.” 하고 저는 씁쓸하게 웃으며, “아까 들었던 기침소리는 내가 헛것을 들은 모양이로구나.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남자보다 여자가 더 든든해. 그럼 꼭 부탁하네.”

 “예, 알겠구만유.”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는 마음 놓고 집으로 돌아갈까 하여 자리에서 일어서는 찰나, 마구간 쪽에서,

 “야, 이 놈아! 목숨을 함부로 여기지 마!” 하는, 분명 서장 목소리입니다. 이어서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가.

 

 명예직은 거기까지 말하고, 그리고는 화로 불을 집게로 건드리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래서요? 어떻게 되었나요.” 나는 재촉했다. “있었나요?”

 “있다 마다요.” 하고 말하고 그는 집게를 화로 안에 있는 재에 깊숙이 꽂고 “이틀 전부터 와 있었던 겁니다. 너무하지 않나요? 이틀이나 전부터 돌아와 있고, 그리고 색시와 의논해서 마구간 지붕 위에 있는, 여기서는 ‘마기’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마른 풀이나 그런 것들을 넣어두는 곳이거든요. 거기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색시가 도와준 거죠. 어머님은 앞이 안보이시니 대충 속여두고는, 그러고서 몰래 마구간에 있는 ‘마기’에 케이고를 숨기고 삼시 세끼 식사를 그리로 가져가 준 거죠. 나중에 케이고가 그랬습니다. 반면 그 색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모르는 척입니다. 그날 밤 제가 가서 색시에게 그토록 모든 것을 털어놓고 말을 했는데도, 그리고 사내 대장부가 고개 숙여 부탁까지 했는데, 글쎄 태연합디다. 오히려 마구간 ‘마기’에서 듣고 있던 케이고 쪽이 너무도 죄송한 마음에 대들보에 끄나풀을 걸고 목을 매어 죽으려고 까지 했던 겁니다.

 서장은 저와 헤어진 후에도 직업상 그 주변을 돌아다니며 지키고 있었던 게죠. 마구간에서 분명 인기척이 있길래 마당에서 몰래 들여다보니 케이고가 매달려 있었다 이겁니다. 그래서 “야, 이 놈아! 목숨을 함부로 여기지 마!” 하고 소리치고 끌어내린 곳에 저희들이 달려갔는데, 그 서장의 “야 이 놈아” 라는 목소리와 함께 저희들은 일어나서 무심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을 때, 그 때 색시의,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른다는 듯 고개를 돌려 마구간 쪽으로 귀를 기울인 모습은, 그야말로 정말 기가 막힙니다. 두렵기까지 하더군요. 그리하여 저희들이 마구간으로 달려와, 케이고는 서장에게 붙잡히고, 이미 색시의 새빨간 거짓말이 들통났는데도, 색시는 제 뒤에서 케이고 쪽을 보고는,

 “언제 왔시유?” 하고 조용히 말하고, 저는 나중에 케이고로부터 이틀 전에 이미 왔었다는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케이고가 돌아왔었다는 사실을 색시가 그 때까지 몰랐었다고 영원히 믿고 있었겠지요. 분명 그렇습니다. 색시는 그 이후로 아무 말도 안하고, 때때로 슬며시 미소까지 지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색기’를 느끼지 않게끔 하는 점이 훌륭하다며 저는 존경하고 있었습니다만, 역시 남자로 하여금 조금은 ‘색기’를 느끼게끔 하는 여성이 선량하고 정직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뭐가 뭔지 원. 이제 저는 여자의 말을 전혀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케이고는 곧바로 서장이 발급해준 증명서를 가지고 아오모리로 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근무하고, 전쟁이 끝나자 금새 돌아와, 지금은 다시 부부 사이 좋게 지내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 색시에 대해서는 어이 없게 생각하고 있기에 웬만해서 케이고 집에는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뻔뻔하고 침착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요? 여자가 그렇게 태연하게 거짓말을 치고 있는 동안에는 일본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떻습니까?”

 “그건 여자는 일본 만이 아닌,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겠죠. 그런데,” 하고 나는 매우 경박한 느낌을 말했다.

 “그 색시는 당신에게 반한 게 아닌가요?”

 명예직은 웃지도 않고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진지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하고 분명이 부정하고 나서, 그리고 점점 더 진지하게 (나는 과거 15년간 동경생활에서 이렇게 정직한 느낌을 받은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작은 한 숨까지 쉬면서, “그러나 저희 집 마누라와 그 색시와는 사이가 나빴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