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따닥 뚝딱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7)

 삼가 아룁니다.

 한 가지만 알려주세요.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저는 올해 스물여섯입니다. 태어난 곳은 아오모리(靑森) 시 테라마치(寺町)입니다. 아마도 모르시겠지만, 테라마치에 있는 청화사(淸華寺) 옆에 토모야라는 작은 꽃집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토모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오모리에 있는 중학교를 나와, 그로부터 요코하마(橫浜)에 있는 군수공장에서 사무원이 되고 3년 근무하여, 그리고는 군대에서 4년간 지냈으며 무조건항복과 함께 태어난 곳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집은 불에 타서 없고, 아버지와 형님과 형수님 셋이서 그 불탄 자리에 대충 작은 집을 지어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중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그 불에 타버린 자리에 세워진 작은 주택에 들어가기에는 아버지께도 형님들 부부에게도 죄송하여 아버지와 형님과 의논한 끝에 이곳 A라고 하는, 아오모리 시에서 20리 정도 떨어진 해안 부락에 있는 삼등우체국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 우체국은 돌아가신 어머님의 친정으로서 국장님께서는 어머니의 오라버님이십니다. 이곳에 근무한지 이제 1년 이상 됩니다만 나날이 자신이 별볼일 없어지는 듯하여 매우 고민입니다.

 제가 당신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것은 요코하마의 군수공장에서 사무원을 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문체(文體)’라는 잡지에 실려있던 당신의 짧은 소설을 읽고, 그리고는 당신의 작품을 찾아 읽는 버릇이 들어, 이것저것 읽고 있는 동안에 당신이 저희 중학교 선배이며, 또한 당신은 중학교 시절 아오모리 시 테라마치에 사는 토요타(豊田) 씨 댁에 계셨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터지는 듯했습니다. 포목상의 토요타 씨라면 저희 집과 같은 동네였으므로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선대의 타자에몬(太左衛門) 씨는 몸집이 크셨으므로 타자에몬이라는 이름이 매우 잘 어울리셨습니다. 당대의 타자에몬 씨는 살이 마르고 멋쟁이시므로 하네자에몬(羽左衛門)이라고도 불러드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두가 좋은 분 같더군요. 이번 공습으로 토요타 씨 댁도 전소되고, 더구나 창고까지 불타 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그 토요타 씨 댁에 계셨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 같아서는 당대의 타자에몬 씨에게 부탁하여 소개장을 받아 당신을 찾아 뵐까도 했으나, 저는 너무도 소심하기에 그저 그런 일을 상상할 뿐 실행에 옮길 용기는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군인이 되어 치바(千葉) 현 해안 쪽 방위로 파견되어 종전까지 그저 매일매일 구멍만 파고 있었으나, 그래도 간혹 반나절 정도라도 휴가가 있으면 동네로 나가 당신의 작품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신께 편지를 보내드리고 싶어 펜을 들어본 것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삼가 아룁니다’ 라고 쓴 다음 무엇을 써야 할지, 특별한 용건은 없고 더구나 저는 당신에게 있어서는 전혀 모르는 남이므로 펜을 든 채로 혼자 당혹스러워할 따름이었습니다. 이윽고 일본은 무조건항복을 하게 되어 저도 고향으로 돌아가 A우체국에 근무하였으나, 얼마 전 아오모리에 간 김에 그곳에 있는 책방에 들러 당신 작품을 찾아, 그리고 당신도 피난을 하여 태어난 고향인 카나기마치(金木町)에 계시다는 사실을 당신의 작품에 의해 알게 되어 또다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당신의 생가로 갑자기 찾아 뵐 용기는 없고, 여러 가지 생각한 끝에 일단 편지를 적기로 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삼가 아룁니다’ 라고 쓴 다음 할말을 잃는다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용건이 있는 편지이기 때문이기에. 더구나 화급한 용건입니다.

 가르쳐 주셨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말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이것은 저 혼자의 문제가 아닌, 저 외에도 이와 비슷한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으므로, 저희들을 위해 가르쳐주십시오. 요코하마에 있는 공장에 있었을 때에도, 또한 군대에 있었을 때에도 당신께 편지를 보내야지, 보내야지 했으나, 지금에 와서야 겨우 당신께 편지를 보내는, 그 첫 편지가 이와 같이 기쁨이 적은 내용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소화(昭和) 20년 8월 15일 정오에 저희들은 병영 앞 광장에 정렬하여, 그리고는 폐하 스스로 하시는 방송이라며, 거의 잡음에 섞여 무엇 하나 들리지도 않는 라디오 방송을 들은 후, 그리고 그리하여 그로부터 젊은 중위가 터벅터벅 단상 위로 뛰어 올라,

 “들었느냐. 알겠느냐.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항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인 일이다. 우리 군인들은 끝까지 항전을 계속하고, 마지막에는 모두 하나도 남김없이 자결하여, 이로써 천황께 사죄를 드린다. 나는 본래부터 그럴 생각이었으니 모두들 그 각오를 해 두도록. 알겠나. 좋아. 해산.”

 그렇게 말하고서 그 젊은 중위는 단에서 내려와 안경을 빼고는 걸으면서 뚝뚝 눈물을 흘렸습니다. 엄숙함이란 그런 장면을 말하는 것일까요. 저는 똑바로 선채로 주변이 점점 어두워져,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그리하여 제 몸이 자연스럽게 땅 밑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죽으려고 했습니다. 정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방에 보이는 숲이 묘하게도 조용하여 칠흑처럼 보이고, 그 꼭대기에서 한 무리의 작은 새들이 한 줌의 깨를 공중으로 뿌린 것처럼 소리 없이 날아올랐습니다.

 아아, 그 때입니다. 등뒤 병영 쪽으로부터 누군가가 망치로 못을 박는 소리가 희미하게 뚝따닥 뚝딱 하고 들려왔습니다. 그것을 들은 순간, 눈에서 콩깍지가 떨어진다는 건 마치 그런 느낌을 말하는 것일까요. 비장함도 엄숙함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려, 저는 무엇인가에 씐 것이 떠난 것처럼 정신이 들어, 왠지 어딘지 모르게 멍한 느낌이었으며, 여름철 대낮의 모래벌판을 바라보아도 저는 어떠한 감개도 무엇 하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배낭에 많은 것을 쑤셔 넣고 멍하니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멀리서부터 들려왔던 희미한 망치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깨끗하게 저로부터 밀리터리즘(militarism)의 환영(幻影)을 깎아내 주어, 이제 또다시 그 비장함이나 엄숙함 같은 악몽에 취하는 일은 절대 없어졌으나, 그러나 그 작은 소리는 제 머리 속 정곡을 정확하게 찔렀는지, 그 후로 현재까지 이어져서, 저는 실로 이상하고 흉측한 간질병 환자 같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난폭하게 발작 같은 것을 일으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무슨 일에 감격하여 불끈 하려 해도 어디선가에서 희미하게 뚝따닥 뚝딱, 하고 그 쇠망치 소리가 들려와, 그 순간 저는 꿈에서 깨어난 듯 눈앞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버려, 마치 영사기가 끊기고는 그저 하얀 스크린만이 남은 것처럼,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듯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허탈하고 바보 같은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처음에 저는 이 우체국으로 와서, 자, 이제부터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 우선 소설이라도 써서, 그리하여 당신께 보내드리고 싶어 우체국의 업무 틈틈이 군대생활의 추억을 써보았는데, 열심히 노력하여 200매 가까이 쓰고서, 이제 드디어 오늘 내일 중에 완성한다고 생각했던 가을 저녁, 우체국 일도 끝나 목욕탕에 가서, 물에 들어가 있으면서 오늘 밤 이제부터 마지막 장을 쓸 때, 오네긴의 마지막 장과도 같은, 그런 식으로 화려한 슬픔으로 맺을까, 혹은 고골리의 “싸움이야기” 식 절망적인 결말로 할까, 하면서 매우 흥분하고 가슴 설레며 목욕탕 안 높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백열등 불빛을 올려보자, 뚝따닥 뚝딱, 이라며 멀리서 그 쇠망치 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그 순간 마치 썰물이 일어나듯 저는 그저 어두침침한 욕조 구석에서 출렁출렁 물을 휘졌고 있는 한 헐벗은 인간에 불과해졌습니다.

 매우 진부한 느낌이 들어, 욕조에서 기어 나와서는 발바닥 떼나 밀고 함께 있는 손님들의 배급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푸쉬킨도 고골리도 그것은 마치 외제 칫솔 이름처럼 느껴져 재미없고 따분하게 들렸습니다. 목욕탕을 나와 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와 묵묵히 밥을 먹고, 그리고 제 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200장 가까운 원고지를 뒤져보고는 너무나도 유치하여 어이가 없고 짜증이 나서 찢어버릴 힘도 없어, 그 이후 매일 휴지 대용으로 썼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오늘까지 소설 같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습니다. 백부님 댁에 약간의 장서가 있기에 가끔 명치(明治)시대, 대정(大正)시대 때의 걸작소설집 같은 것을 빌려 감탄하기도 감탄하지 않기도 하며, 매우 불성실한 태도로 눈보라 치는 밤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 전혀 정신적이지 못한 생활을 하여, 그러는 동안 세계미술전집 등을 보고, 이전에 그리도 좋아했던 프랑스 인상파 그림에는 그리 감탄하지 않고, 요즘은 일본 겐로쿠(元祿) 시대의 오가타 코린(尾形 光琳)과 오가타 겐잔(乾山) 두 사람의 그림들이 눈을 끌었습니다. 코린의 진달래 등은 세잔느, 모네, 고갱, 누구의 그림보다도 훌륭하게 여겨졌습니다. 이리하여 다시 점점 저의 이른바 정신생활이 부활한 듯하여, 그러나 아무래도 제가 코린이나 겐잔처럼 대가가 되려는 거만한 야심을 일으키는 일 없이, 그저 시골의 딜레탕트(dilettante),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우체국 창구에 앉아 다른 사람들의 돈을 세고 있는 일, 기껏해야 그 정도지만, 저 같은 무능무학의 인간에게는 그런 생활이라 해도 그리 타락한 생활은 아니겠지. 겸손의 왕관이라는 것도 있을 지도 모른다. 평범한 나날의 업무를 열심히 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고상한 정신생활일지도 모른다. 하고 조금씩 자신의 하루하루 생활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어, 그 무렵 마침 화폐개혁령이 떨어져 이런 시골 촌에 있는 삼등우체국에서도, 아니아니, 작은 우체국일수록 일손부족이라서 정신 없이 바쁜 듯하여, 그 무렵 저희들은 아침 일찍부터 예금신고접수나, 구 화폐에 인지를 붙이느라 녹초가 되어도 쉴 수가 없어, 특히 저는 백부님 댁에 얹혀사는 몸이었으니 은혜를 갚아드릴 절호의 기회라며 두 손이 마치 쇠장갑이라도 끼고 있는 것처럼 무거워, 조금도 제 손이라는 느낌이 없어질 정도로 일했습니다.

 그렇게 일하고 죽은 듯이 잠이 들고, 그리하여 다음 날 아침은 머리맡에 놓인 자명종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 곧바로 우체국에 출근하여 대청소를 시작합니다. 청소 같은 일은 여직원이 하게 되어 있었으나, 그 화폐교환작업이라는 대소란이 일어난 이후, 제 일처리에도 묘한 탄력이 붙어 닥치는 대로 마구 일하고 싶어져,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라는 식으로 무척이나 가속이 붙어, 거의 반 미친 것처럼 사자분신(獅子奮迅)을 계속하여, 바야흐로 화폐교환에 따른 난리도 오늘로 끝이라는 날에, 저는 역시 아직 동이 트기 전부터 일어나 우체국 청소를 서둘러 하고, 모두 마친 후 제 자리에 앉아, 마침 햇살이 제 얼굴에 비추어 와서, 저는 수면부족인 눈을 가슴츠레 뜨고, 그래도 왠지 매우 만족스런 기분이 들어, 노동은 신성하다는 말이 떠올라 살짝 숨을 내쉬었을 때, 뚝따닥 뚝딱 하고 그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 듯하여, 갑자기 모든 것이 쓸모 없어지는 것 같아, 저는 일어서서 제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렸습니다. 식사를 하라고 해도 저는 몸이 안 좋아 오늘은 일어나지 않겠다며 무뚝뚝하게 말하고, 그 날은 우체국에서도 제일 바빴다고 했는데, 가장 능력 있게 일했던 제가 자리에 눕자, 실로 모두 곤란한 모습이었으나, 저는 종일 비몽사몽 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백부님께 은혜를 갚는 것도, 저의 이런 태도 때문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 듯했으나, 이미 제게는 정성 들여 일할 기분은 조금도 없어, 그 다음 날은 매우 늦게 일어나, 그리고 멍하니 제 자리에 앉아 하품만 하다가, 대부분의 일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직원에게 맡겨놓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저는 심히 기력이 없어 게으르고 불쾌한, 즉 우체국 창구에 앉은 평범한 직원이 되었습니다.

 “아직 넌 어디 몸이 안 좋은가?”

 라고 백부님인 국장이 물어봐도 슬쩍 웃음을 지으며,

 “어디도 나쁘지 않아요. 신경쇠약인지도 모릅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래, 맞아. 라고 백부님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넌 머리가 나쁜 주제에 어려운 책을 읽으니까 그렇게 된 거야. 나나 너처럼 머리 나쁜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게 하는 게 좋아.” 라고 말하여 웃고, 저도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이 백부님은 분명 전문학교를 나왔다고 하는데, 정말 어디에도 인텔리 같은 모습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하여, (제 글에는 무척 ‘그리고 그리하여’가 많지요? 이것도 역시 머리 나쁜 사람이 쓰는 문장의 특색일까요. 저도 매우 신경 쓰이지만, 그래도 본의 아니게 나오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하여 저는 사랑을 시작했습니다. 웃으시면 안됩니다. 아니, 웃으셔도 할 수 없습니다. 어항에 든 송사리가 바닥에서 5센티 정도 높이에 뜬 채로 가만히 멈춘 채로, 그리고 스스로 아이라도 가진 것처럼 저도 멍하니 지내며 언제랄 것도 없이 아무래도 부끄러운 사랑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시작하면 매우 음악이 마음에 와 닿더군요. 그것이 사랑의 질병에 대한 분명한 징조라고 생각합니다.

 짝사랑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여성이 너무도 좋아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 분은 이 곳 해안에 있는 부락에 한 채밖에 없는 작은 여관에서 일하는 분입니다. 아직 스무 살도 안된 듯해 보입니다. 백부님인 국장이 술을 좋아하시므로 무슨 부락에 연회가 그 여관 연회석에서 열리거나 할 때마다 꼭 나가시기에, 백부님과 그 분은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 그 분이 예금이나 보험 같은 볼일로 우체국 창구에 나타나면 백부님은 웃기지도 않은 진부한 농담을 하여 그 분을 놀립니다.

 “요즘은 너도 경기가 좋아서 저금도 꽤 열심히 하나 보구만. 아주 좋은 일이야. 괜찮은 남자라도 생겼나?”

 “재미없어요.”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재미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합니다. 반 다이크 그림의 여자 얼굴이 아닌, 귀공자를 닮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토키타 하나에(時田花江)라는 이름입니다. 예금통장에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미야기(宮城) 현에 살고 있었던 듯, 통장의 주소란에는 예전의 그 미야기현 주소도 적혀 있어, 그리고 빨잔 줄로 지워지고, 그 옆에 이곳 새로운 주소가 적혀 있습니다. 여직원들의 소문에 의하면 미야기 현 쪽에서 전쟁 피해를 입어, 무조건항복 직전에 이 부락으로 불쑥 나타난 여자로서, 그 여관 주인 아주머니와 먼 친척이라고 하며, 품행이 그리 좋지 않아, 아직 어리면서도 수완이 좋다는 말이었으나, 피난 온 사람들 중 그 동네 사람들한테 좋은 소리를 듣는 사람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그런 수완이 좋다는 말은 조금도 믿지 않았습니다만, 그러나 하나에 씨의 저금도 절대 볼품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체국 직원이 이런 일을 공표하면 안되도록 되어있으나 아무튼 하나에 씨는 우체국 국장에게 놀림을 받으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200엔에서 300엔의 새 화폐를 예금하러 와서, 총액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설마 좋은 남자가 생겼으니까, 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만, 저는 하나에 씨의 통장에 200엔이나 300엔이라고 적힌 도장을 찍을 때마다 왠지 가슴이 설레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점차 저는 괴로워졌습니다. 하나에 씨가 절대 수완이 좋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 부락 사람들은 모두 하나에 씨를 노리고, 돈을 주거나 하여 하나에 씨를 못쓰게 만들어버리지는 않을까, 분명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 깜짝 놀라 밤중에 자다가 벌떡 일어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에 씨는 역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꼴로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가지고 옵니다. 지금은 이제 가슴이 두근거려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너무나 가슴이 막혀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이마에는 식은 땀이 흐르는 듯한 마음으로, 하나에 씨가 태연하게 내놓는, 인지가 붙은 지저분한 10엔 지폐를 한 장 두 장 세면서, 문득 전부 찢어버리고 싶어지는 발작이 일어났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저는 하나에 씨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카가비바나(鏡花) 소설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죽어도 사람들의 놀이개가 되진 말아라!”라는 멋 떨어진, 그러나 저 같은 볼품없는 시골 촌놈한테는 도저히 꺼낼 수 없는 대사이지만, 그래도 저는 진지하게 그 한 마디를 간절히 해주고 싶었습니다. 죽어도 사람들의 놀이개가 되진 말아라, 물질이라는 게 다 뭐냐, 돈이 다 뭐냐, 라면서 말이죠.

 누구를 생각하면 그 사람도 저를 생각한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일까요. 그것은 5월 중순이 조금 지났을 때였습니다. 하나에 씨는 여전히 태연하게 창구 너머로 나타나, 부탁합니다, 라고 하며 돈과 통장을 제게 내밀었습니다. 저는 한 숨을 쉬고 그것을 받아 들어, 슬픈 마음으로 지저분한 지폐를 한 장 두 장 셉니다. 그리하여 통장에 금액을 적고서는 묵묵히 하나에 씨에게 되돌려주었습니다.

 “5시쯤 시간 있으세요?”

 저는 저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봄바람에 속고 있는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그만큼 낮고 빠른 말이었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다리 쪽으로 오세요.”

 그렇게 말하고 살며시 웃고는, 곧 태연하게 하나에 씨는 사라졌습니다.

 저는 시계를 보았습니다. 두 시를 조금 넘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5시까지, 창피한 말이지만 제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괜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서는 우왕좌왕 하며 갑자기 옆에 앉은 여직원에게 오늘은 날씨가 참 좋다, 라며 흐린 날인데도 큰 소리로 말하고는 상대방이 놀라자 눈을 부라린 후 일어서서 화장실에 간다거나, 정말 바보 같았겠지요. 5시, 7, 8분 전에 저는 집을 나섰습니다. 도중 제 두 손의 손톱이 자란 것을 보고, 그것이 왠지 정말 울고 싶을 정도로 신경이 쓰였던 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다리 옆에 하나에 씨가 서 있었습니다. 치마가 너무 짧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길게 뻗은 다리의 맨살을 살짝 보고 저는 눈을 돌렸습니다.

 “바다 쪽으로 가요.”

 하나에 씨는 차분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에 씨가 먼저, 그리고 대여섯 발자국 떨어져 제가 천천히 바다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 떨어져 걷고 있는데도 두 사람의 발걸음이 어느새 딱 맞아서 난처했습니다. 흐린 날에 바람이 조금 불어, 바닷가에는 모래가 날리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좋겠어요.”

 바닷가에 정박해 놓은 큰 어선과 어선 사이에 하나에 씨는 들어가, 그리고 모랫바닥 위에 앉았습니다.

 “이리 와요. 앉으면 바람도 안 불고 따뜻해요.”

 저는 하나에 씨가 두 다리를 앞으로 뻗고 앉아 있는 곳에서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았습니다.

 “불러내서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께 한 마디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저를 저금, 있잖아요,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죠?”

 저도 때는 이 때다 싶어,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죠.” 라고 말하고 하나에 씨는 고개를 숙이고는 맨살인 다리 위에 모래를 짚고 뿌리면서 “그건요, 제 돈이 아니에요. 제 돈이라면 저금 같은 건 안 해요. 일일이 저금 같은 건 귀찮아요.”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잖아요? 그 통장은요, 주인 아주머니 거예요. 하지만 이건 절대로 비밀이에요. 당신,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주인 아주머니가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제게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하지만 그건 정말 복잡한 일이니까 말하기 싫어요. 가슴이 아프거든요, 저는. 믿어 주시겠어요?”

 조금 웃고서 하나에 씨의 눈이 이상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자, 그것은 눈물이었습니다.

 저는 하나에 씨에게 키스를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에 씨와 함께라면 어떤 고생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쪽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정말 싫어요. 전 당신한테 오해 받고 있지나 않을까 하여, 당신한테 한 마디 드리고 싶어서, 그래서 오늘 큰맘 먹고.”

 그 때 실제로 근처에 있는 오두막집에서 뚝따닥 뚝딱 하고 못 박는 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이 때의 소리는 제 환청이 아니었습니다. 해안에 있는 사사키 씨의 창고로서, 사실 큰 소리로 못을 박기 시작한 것입니다. 뚝딱뚝딱, 뚝따닥 뚝딱, 연신 망치질을 합니다. 저는 몸을 떨며 일어섰습니다.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나에 씨의 바로 뒤편에 상당히 많은 양의 개 똥이 있는 것을 그 때 보고는, 웬만하면 그것을 하나에 씨에게 말해주려고 했습니다.

 바다는 나른하게 파도 치며, 지저분한 돛을 단 배가 강가 바로 옆을 비틀비틀 지나갑니다.

 “그럼 실례.”

 삭막할 따름이었습니다. 저금이 어찌 되었든 내가 알 게 뭐야. 본래 남남이다. 사람들 놀이개가 되든 말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바보 같으니라구. 배가 고프다.

 그로부터 하나에 씨는 여전히 일주일 또는 열흘 간격으로 돈을 가져와 저금하고, 벌써 이제 몇 천원까지 갔으나, 제게는 조금도 흥미가 없습니다. 하나에 씨 말처럼 그것이 주인 아주머니의 돈인지, 아니면 역시 하나에 씨의 돈인지, 어찌되었든 그건 전혀 나와 상관 없는 일이거든요.

 그리하여 대체 이것은 어느 쪽이 실연당한 것인지 따져보면, 제게는 아무래도 실연당한 쪽은 제가 아닐까 합니다만, 그래도 실연당했다고 해서 그리 슬픈 마음도 들지 않으므로, 이건 정말 이상한 실연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저는 또다시 멍한, 아무런 생각 없는 평범한 우체국 직원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6월에 들어 저는 볼일이 있어서 아오모리에 가서 우연히 노동자들의 데모를 보았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사회운동 또는 정치운동 같은 것에는 그리 흥미가 없고, 라기 보다는 절망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누가 해도 비슷하다, 또한 자신이 어떤 운동에 참여해도 어차피 그 지도자들의 명예욕이나 권력욕을 위해 희생될 뿐이다, 아무런 의심할 것 없이 당당하게 소신을 피력하고 내 말을 따르면 분명 너와 네 집, 네 마을, 네 나라, 아니 전세계가 구원 받으리라 하며 거창하게 외치고는,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은 너희들이 내 말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그리하여 한 기생에게 채이고 채이고 또 채이고는 자포자기가 되어 공창 폐지를 외치고 분연히 미남 동지를 때리고 횡포를 부리며, 너무나 시끄럽게 군 덕분에 어쩌다가 훈장도 받아, 흥분하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마누라에게 이것 봐, 라며 의기양양, 그 훈장이 든 작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 마누라에게 보이면, 마누라는 냉정하게 어머, 5등훈장이잖아요, 이왕 받을 거라면 2등훈장 정도는 돼야지, 라고 말하고 남편은 낙담하는 식의, 시종일관 반 미치광이 같은 인간들이 그 정치운동이다 사회운동이다 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올해 4월 총선거도 민주주의다 뭐다 떠들어대도 제게는 도무지 그들에게 믿음이 안가고, 자유당, 진보당은 여전히 낡아빠진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 말할 것도 없고, 사회당, 공산당은 묘하게 들떠있긴 하지만, 이것도 역시 패전편승이라고나 할까요, 무조건항복이라는 시체 위에 생긴 구더기들처럼 불결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어, 투표일이었던 4월 10일에 저도 백부님이신 우체국장으로부터 자유당 카토(加藤) 씨를 찍으라는 말을 들었으나, 네, 네 하고는 집을 나와 바닷가를 산책하고, 그리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사회문제나 정치문제에 대해 아무리 말을 해대도 저희들의 하루하루 생활 속에 있는 우울함은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으나, 하지만 저는 그날 아오모리에서 우연히 노동자들의 데모를 보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제 생각은 모두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기발랄, 이라고 해야 될까요. 어찌도 그렇게 즐거워하는 행진이었는지 모릅니다. 우울함의 그림자도 비굴의 주름도, 저는 무엇 하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직 넘쳐나는 활력뿐이었습니다. 젊은 여성들도 손에 깃발을 들고 노동가요를 불렀으며, 저는 가슴이 벅차 올라,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아, 일본이 전쟁에 지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라는 모습을 본 것 같았습니다. 만약 이것이 정치운동이나 사회운동으로부터 태어난 결과라고 한다면, 인간은 우선 정치사상, 사회사상이야말로 제일 먼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행진을 보고 있는 동안, 제가 가야 할 한줄기 빛이 드디어 분명히 나타난 것처럼 기쁨에 가득 차, 눈물이 상쾌하게 얼굴을 흘러내려, 그리고 물속에 들어가 눈을 떴을 때처럼 주변 풍경이 뿌연 초록빛으로 번져, 그리고 그 희미한 불빛 속을 붉은 깃발이 타오르는 듯한 모습을, 아아, 그 빛깔을 보며 저는 울면서, 죽어도 잊지 않으리라 생각하자, 뚝따닥 뚝딱 하고 저 멀리서부터 들려와, 이제 그것뿐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저 소리는 무엇일까요. 허무라는 이름으로 쉽게 치워버릴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뚝따닥 뚝딱 하는 환청은 허무마저도 허물어뜨립니다.

 여름이 되면 이 지방 청년들 사이에서 급격하게 스포츠 열기가 달아오릅니다. 제게는 다소 늙은이 같은 실리주의적인 경향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아무런 의미 없이 발가벗고 씨름을 하고, 내던져져 큰 상처를 입는다든가, 얼굴을 붉히며 힘껏 달려 누구보다 누가 더 빠르다든가, 어차피 100미터를 20초 대에 달리는 사람들끼리 도토리 키 재기인데, 쓸데없는 짓들인 것처럼 보여, 청년들이 하는 그런 스포츠에 참가하려고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8월에 여기 해안가에 있는 각 부락을 누비며 주파하는 릴레이경주라는 것이 있어, 이곳 동네의 청년들이 다수 참가하여, 여기 A우체국도 그 경주의 중계소가 되어, 아오모리를 출반한 선수들이 여기서 다음 선수와 교체를 한다고 하여, 오전 10시 조금 넘어, 서서히 아오모리를 출발한 선수들이 이 곳에 도착할 무렵이라고 하길래, 우체국 직원들은 모두 밖으로 구경을 나가, 저와 국장만이 우체국에 남아서 간이보험서류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만, 이윽고 왔다, 왔다 하는 함성이 들려와, 저는 서서 창문으로 보고 있었으나, 이것이 이른바 라스트 스퍼트라고 여기는 것이겠죠. 두 손의 손가락을 개구리처럼 벌리고 바람을 저으면서 달리는 이상한 팔 동작을 하며, 그리하여 웃통도 벗고 팬티 하나를 입은 차림으로, 물론 맨발이었으며, 넓은 가슴을 높이 치켜들고 고뇌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제치고는 좌우로 움직이며 비틀비틀 우체국 앞까지 달려와 우욱, 하며 신음소리 한 번 내고 쓰러지자,

 “그래! 잘 뛰었다!” 라고 곁에 있는 사람이 소리쳐, 그를 껴안고, 제가 보고 있는 창문 밑으로 데려와, 준비된 세수대아에 든 물을 확 하고 그 선수에게 끼얹자, 선수는 거의 의식을 잃어 위험한 상태인 것 같기도 하고, 새파란 얼굴을 하고 누워있는,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실로 신기한 감격을 느낀 것입니다.

 가련, 이라는 말을 스물 여섯인 제가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가엾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힘의 낭비도 여기까지 오면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1등을 해도 2등을 해도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흥미를 갖지 않는대도, 그래도 목숨을 걸고 라스트 스퍼트 같은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역전경주에 의해 이른바 문화국가를 건설하려는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또한 이상도 뭐도 없는데, 그래도 체면상 그런 이상을 말하여 세상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도 없겠지요. 하물며 장래 유명한 마라톤 선수가 되려는 야심도 없고, 어차피 시골동네 달리기 경주로 기록이라는 것도 따지지 않는다는 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집으로 돌아가도 가족들에게 자랑할 마음도 없고, 오히려 아버지에게 혼나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하지만 그래도 달리고 싶은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누구한테 칭찬을 받지 않아도 괜찮은 겁니다. 그저 달리고 싶은 것입니다. 무보수의 행위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에 오를 때에는 감을 따먹으려는 욕심이 있으나, 이 목숨을 건 마라톤에는 그것마저도 없습니다. 거의 허무의 정열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이 당시 저의 공허했던 마음과 딱 맞아떨어졌던 것입니다.

 저는 직장동료들을 상대로 캐치볼을 시작했습니다. 지칠 때까지 하면 왠지 탈피와도 같은 상쾌함이 느껴져, 이거다, 라고 느낀 순간, 역시 그 뚝따닥 뚝딱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 뚝따닥 뚝딱 하는 소리는 허무의 정열조차도 무너뜨립니다.

 이제 요즘에 와서는 그 뚝따닥 뚝딱 소리가 점점 빈번하게 들려, 신문을 펼치고 새롭게 공포되는 헌법을 한 조항, 한 조항 정독하려 하자 뚝따닥 뚝딱, 직장 인사이동에 대해 백부님으로부터 상담을 받으면, 좋은 생각이 문득 가슴 속에 떠 올라도 뚝따닥 뚝딱, 당신의 소설을 읽으려 해도 뚝따닥 뚝딱, 얼마 전 이 부락에 화제가 일어나 현장으로 달려가려 했을 때도 뚝따닥 뚝딱, 이제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닐까 하면 이것도 뚝따닥 뚝딱, 자살을 생각하다 뚝따닥 뚝딱.

 “인생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라고 저는 어젯밤 백부님과 술잔을 나누며 농담조로 여쭤봤습니다.

 “인생, 그건 모르겠어. 그러나 이 세상은 색(色)과 욕(慾)이야.”

 의외로 명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저는 밀매상인이 될까 했습니다. 그러나 밀매상인이 되어 1만엔 벌었을 때를 생각하자 바로 뚝따닥 뚝딱이 들려왔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이 소리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소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지금 실제로 이 소리 때문에 꼼짝달싹 못할 지경입니다. 제발 답장을 주십시오.

 한편,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저는 이 편지를 아직 절반도 못 썼을 때 벌써 뚝따닥 뚝딱이 계속 들려왔습니다. 이런 편지를 쓰는 부질없음. 그래도 참으면서 아무튼 여기까지 썼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부질없으므로 자포자기가 되어 거짓말만 잔뜩 써놓은 것 같습니다. 하나에 씨라는 여자도 없고 데모도 안 봤습니다. 그 밖의 일도 대부분 거짓인 듯 합니다.

 그러나, 뚝따닥 뚝딱 만은 거짓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 읽어보지 않고 그냥 보내드립니다. 이만 줄입니다.”

 

 이 기이한 편지를 받아 든 모 작가는 딱하게도 무학에 무사상인 사나이였으나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삼가 답장을 올립니다. 매우 사치스런 고민이시군요. 제게는 별로 동정심이 안 생깁니다.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열 눈이 보는 곳, 어떠한 변명도 성립되지 않은 추태를 당신은 아직도 회피하고 있는 것 같군요. 진실된 사상은 지혜보다도 용기를 필요로 하는 법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몸은 죽어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여기서의 ‘두려움’은 ‘경외’의 뜻에 가까운 듯합니다. 이 예수의 말에 벽력을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의 환청은 그칠 것입니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