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숲

마루야마 사사구 (丸山 獻)

 그는 지금 시카고에 있다.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에서부터 뉴햄프셔주에 있는 맨체스터 공항까지 가는 길에 시카고의 오하라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했기 때문이다. 직접 맨체스터 공항까지 가고싶었으나 곧바로 가는 비행기편이 없었던 것이다. 저런 작은 공항까지 직접 가는 비행기가 있을 리 없다는 건 당연하지 하고 그도 납득했었다. 보스톤 공항이라면 직접 가는 비행기도 있으나 거기서 할머니 집까지는 1시간 정도 셔틀버스를 타야만 했다. 셔틀버스를 타려면 기다려야 할 뿐 아니라 합승이었다. 미국인은 초면에도 말을 걸어오는 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이 여행을 계획했을 때부터 보스톤에 가서 셔틀버스로 가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의 목적지는 할머니 집이다. 함께 살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2년 전에 돌아가시고, 맨체스터에서 혼자 지내고 계신다.

 캘리포니아의 LA공항에서 비행기가 출발한 시간은 밤 11시였다. 전화로 비행기표를 예약할 때에, 이 비행기는 '레드 아이 라인(red eye line)'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밤새도록 날아가므로 승객은 잠을 잘 수가 없어 눈이 붉게 충혈된다는 것이다. 그는 시카고의 오하라 비행장에 도착한 후 아직 거울을 보지는 않았으나 분명 붉은 눈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비행기 안에서는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행기가 오하라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4시 반이며, 그는 갈아타기 위해 다른 게이트로 빠져 나와 의자에 앉은 참이었다. 잠깐 눈을 붙이고는 싶었으나 대합실 천장에서 매달린 텔레비전에서 너무나도 이른 뉴스가 들려와, 시끄러워 잠을 청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잠이 부족한 그에게 있어서 텔레비전은 유난히 소란스럽게 느껴졌다. 텔레비전 소리는 시끄러웠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탈 비행기가 출발하는 게이트로부터 떠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점차 잠이 깨어왔다.

 의자에 앉아 맨체스터 행 비행기가 출발하는 시간까지의 1시간 반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던 중에 한 아름다운 여성이 걸어와 그로부터 세 자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이 여성은 로스앤젤레스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다.

 그녀에 대해서는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의 일이다. 이륙하고 나자 그녀는 잠이 들었다. 그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으나 그녀는 금새 잠을 청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부러워하고 있을 무렵 그 일이 일어났다. 그녀가 잠든 채 조금씩 기대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그때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고 있었으나 왼쪽 팔에 무게를 느꼈을 때 곧 그것이 그녀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쩌면 그녀가 잠이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하고 무의식적으로 바랬는지도 모른다.

 눈을 뜨고 고개를 조금 옆으로 돌리자 정말로 그녀는 기대왔다. 어떤 남자라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아름다운 여성이 자기에게 기대어 잠을 잔다는 일을 그는 기쁘게 생각했다. 이대로 계속 있었으면 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그녀는 깨고 말았다. 기내에 '땡'이라는 소리와 함께, 난기류가 다가오므로 시트벨트를 착용해달라는 안내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소리와 안내방송으로 깨어난 그녀는 자신이 기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Excuse me(죄송합니다)" 라고 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여성이 제게 기대는 걸 사실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수줍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짓고는 다시 눈을 감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나누었던 대화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머리 속에서 몇 번이고 복창했다.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이후에도 두 번 잠을 자면서 기대왔다. 두 번째부터 그녀는 아무 말도 안하고 수줍은 듯 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행동이 매우 귀엽게 여겨졌다.

 이 여성이 그의 곁에 앉은 것이다. 그녀는 20대 전반 정도의 나이로서, 머리카락은 약한 흰빛을 띤 금발이었다. 몸매는 마르지도 찌지도 않았으나 조금 살이 붙은, 건강하게 보이는 체형이다. 가슴은 그렇게 크지 않고 얼굴은 비교적 작았다. 속눈썹이 길어, 그것은 분명 잠이 부족한 그녀의 눈이 크게 뜨여진 것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 표정으로 미루어 볼 때 그와 같이 그녀도 조금 피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근처에 앉아있는 그가 비행기 안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는 듯하다. 그가 말을 걸까 망설였으나 역시 말을 걸기로 했다. 평소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그리 말을 거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여행을 왔다는 해방감에 의해 말을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일어서서 그녀에게 다가간 후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까 옆에 앉으셨던 분이죠?"

 그녀는 조금 놀란 모습으로

 "아, 그랬었죠."

 라고 말했다.

 "옆에 앉아도 될까요?"

 "아, 네에."

 그녀가 조금 당황한다는 걸 느꼈으나 모르는 척하고 옆자리에 앉아 계속 말을 걸기로 했다. 이미 결정한 것이었으므로 이제와서 그만두기는 싫었다.

 "혹시 맨체스터까지 가시나요?"

 "예, 그래요. 남자친구 부모님이 거기 계셔서, 찾아뵈러 가는 길이에요."

 "그렇군요."

  ···

 "맨체스터는 처음인가요?" 그는 물었다.

 그는 '남자친구'에 대해 더 이상 말을 꺼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아뇨, 몇 번 갔던 적이 있어요."

 "저는 오랜만에 가는 건데, 역시 요즘은 추울까요?"

 지금은 12월이다.

 "예, 하지만 올해는 따뜻한 것 같네요. 아직 눈은 안 왔다더군요."

 "저런, 아직 안 왔군요. 아쉽네요.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는 올해 맨체스터가 따뜻하다는 점, 그리고 눈이 안 왔다는 점도 알고는 있었으나 모르는 척을 하고 말았다. 말을 맞춰주기 위해 아는 것도 종종 모르는 척을 하곤 했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었으나 이것이 잘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왕이면 안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 다시 모르는 척을 했을까 하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캘리포니아에 비하면 춥겠죠. 따뜻한 그곳과는 달리 겨울다운 날씨를 겪을 수 있어 좋지요."

 "예,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코트도 입을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방긋 웃었다.

 "그건 어떤 코트죠?"

 "목 부분에 푹신푹신한 털이 달린 하얀 코트예요. 저쪽에 있으면 전혀 입을 기회가 없잖아요."

 "푹신푹신한 코트라. 매우 따뜻하겠군요."

 그는 그녀가 하얗고 목에 푹신푹신한 털이 달린 코트를 입은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상상 속에서 그 코트는 그녀에게 매우 어울렸다.

 "분명 잘 어울릴 거예요."

 "예? 어떻게 알아요? 코트를 본 적도 없으면서."

 "잠깐 상상해봤어요."

 "하하하."

 라고 그녀는 웃었다.

 그는 이 웃음의 의미를 잘 몰랐으나, 그녀가 조금 마음을 연 듯하여 안심했다.

 "그런데 조금 이르지만 저기 있는 스타박스에서 커피라도 드시지 않을래요?"

 "전 커피를 안 마시거든요. 그리고 아까 비행기 안에서 준 오렌지 쥬스 팩이 있어서요."

 "네에."

 그는 이대로 그녀와 대화를 계속할까, 커피를 혼자서 마시러 갈까 망설였다. 하지만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만 저는 머핀이 먹고 싶네요. 스타박스의 블루 베리 머핀이 맛있죠. 학교 근처에 있어 자주 갔었거든요."

 "그럼 가죠."

 둘은 가게까지 걸어갔다.

 스타박스에서 그녀는 블루 베리 머핀을, 그는 바나나넛 머핀과 톨 카페라테를 주문하고, 아직 조금 어두운 비행기 정착장이 잘 보이는 창가에 마주보고 앉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다. 땅에는 눈이 엷게 쌓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옆에 있는 비행기는 어름을 녹이기 위해 물을 맞고 있다. 그 곁에서 감색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서 있는 사람이 추워 보인다.

 자리에 앉아서부터 그들은 이제부터 맨체스터에서의 예정이나 캘리포니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비행기에 탑승할 시간이 되어 그녀와 그는 탑승구 쪽으로 걸어가 비행기를 탔다. 이번 비행기에서 그들의 자리는 매우 떨어져 있었다. 그녀의 자리는 7-D였으며 그는 23-A였다. 비행기가 맨체스터에 도착하여 그가 비행기에서 나올 무렵에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게이트 앞에는 없었다. 그는 곧바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마중 나와줄 것을 부탁했다. 할머니 차안에서 그는 생각했다.

 "역시 춥군."

 "그러고 보니 그녀의 이름은 뭐였을까."

 "미처 묻지를 못했네."

 "하지만 생각보다 춥진 않군."

 차는 숲 속 작은 길을 달리고 있다. 맨체스터에는 나무가 많다. 잎사귀가 거의 없는 나무들은 흐린 하늘 밑에서 검은 숲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는 이 검은 숲 속을 푹신푹신한 털이 목에 달린 흰 코트를 입고 걷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