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본인

카노 이치로

 "이봐!"

 10년만에 옛 친구인 키무라를 만난 것은 긴자(銀座)의 어느 골목에서 였다.

 "오랜만이군 그래."

 그는 기뻐하며 미소를 지었으나 목소리에 힘이 없었고, 눈밑은 시꺼멓게 기미가 끼고 안색도 몹시 안 좋았다. 한 마디로 피로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의 모습이었다.

 "자네 무척 피곤해 보이는데?"

 "요즘 하도 바빠서 말이야......"

 키무라는 오늘날 일본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업 중의 하나인 N상사의 최전선 영업사원이었다. 해외근무 경험도 풍부하며, 친구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엘리트 사원의 표본과도 같은 사나이였다. 모두들 그를 두고 '경제 동물(economic-animal)'의 화신 같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보는 키무라의 병자와 같은 안색은 어떻게 된 것일까.

 15분 정도라면 잠깐 짬을 낼 수 있다는 키무라를 붙잡고 근처 찻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안쓰런 느낌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바쁜 것도 좋지만 건강에도 신경을 써야지. 어디 아픈 거 아냐?"

 "자네는 의사지? 잘 만났군. 나 좀 한 번 진찰해 줄 수 있겠나? 바빠서 회사의 의무실에도 갈 시간이 없다네. 혈압도 이상하고 위장과 간장도 정상이 아닌 것 같아. 식욕은 전혀 없고 가끔 눈도 침침해질 때가 있어. 미국에서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그 때부터 좀 심상치 않은 기분이야."

 키무라의 말에 따르면, 한번은 뉴욕에서 계약시간에 쫓겨 과속을 하다가 그만 충돌사고가 났다고 한다. 그래도 의식만은 멀쩡했기에, 그는 사고 현장에서 바로 일어나 뛰어간 덕분에 다행히 계약을 맺을 수가 있었다고 했다. 오늘날 일본의 경제적 발전은 키무라와 같은 사나이에 의해 이룩되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듯한 이야기였다.

 "저런... 그 정도로 할 것 까지야.... 만약에 휴유증이라도 있으면 큰 일 아닌가. 꼭 시간을 내서 병원으로 와 주게. 정밀검사를 해 볼 테니까."

 "정말 고맙네, 잘 부탁해. 그런데 이번 토요일도 일요일도 거래상대와 골프약속이 있어. 아무튼 가까운 시일 안에 꼭 찾아갈게."

 나는 키무라와 명함을 교환한 뒤, 그 바쁜 친구가 힘없는 걸음으로 골목을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저렇게 해서까지 회사를 위해 일해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긴 저 친구야말로 일본 상사원의 전형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 키무라로부터 1시간정도 시간이 나는데 지금 가도 되겠느냐며 전화가 걸려온 것은 긴자에서 만난지 열흘이 지나서였다.

 그는 택시를 타고 왔다. 진찰실에서 다시 만난 그의 얼굴은 열흘 전보다도 더 안 좋아 보였으며 눈은 움푹 꺼지고 몸도 비쩍 말라있었다.

 "몸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아."

 키무라는 모기 울음소리같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숨 쉬는 것도 몹시 힘이 들어. 움직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회사에서 내가 맡은 일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몸에 채찍질을 하는 심정으로 억지로 돌아다니고는 있는데..."

 "과로야, 이 사람아. 정말 일본인은 너무 일을 많이 해.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거든. 이제 서서히 노동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하는데..... 어디 한 번 진찰을 해 보자."

 나는 청진기를 그의 가슴에 잠시 대었다가, 나도 모르게 귀속을 후볐다. 심장의 박동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귀속을 청소한 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렸지만, 진찰실에 걸려있는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리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또한 청진기가 막혀있지 않다는 사실도 새삼 확인한 뒤 다시 그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었다. 역시 박동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박동소리 뿐만 아니라 폐문(肺門)을 통과하는 호흡 소리도, 위액이 분비되는 '꾸욱 꾸욱'하는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미친 듯이 청진기를 여기저기 대어보고, 맥도 짚어보고, 비공을 거울에 비춰보기도 하고, 눈꺼풀을 뒤집어보기도 하고, 혀를 내밀어보라 하기도 하였다.

 결론은 한 가지였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면, 키무라는 죽어 있는 것이다.

 "어때? 어디가 나쁜 거지?"

 키무라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정신이 들었다.

 "응? 아, 그러니깐 그게......"

 "뭐라고?"

 "아니... 그게 말이야..."

 "똑바로 말을 해 줘. 설령 암이라는 선고를 받는다 해도 좋아. 병을 모른다는 것은 오히려 더 불안하니까."

 "......과로야. 단순히 과로지만 좀 심한 경우지. 영양제를 줄께."

 나는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진찰실 옆의 조제실로 가서는 넓적다리를 있는 힘을 다해 꼬집었다. 아파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악몽이라면 제발 깨어달라고 빌었으나 이것은 결코 꿈이 아니었다.

 나는 영양제 한 줌을 키무라에게 주었다. 그가 약간 안심한 표정으로 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맥이 빠진 채 환자용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키무라는 뉴욕에서 있었던 교통사고 때 사망한 것이 틀림없었다. 일에 대한 책임감, 사명감, 회사에 대한 충성심 등이 뼈 속 깊숙히 배어있는, 비즈니스에 대한 헌신. 그것이 그로 하여금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하도록 만든 것이다.

 카리브 해의 섬나라인 하이티에는 [부두교(敎)]의 신비한 마력에 의해 무덤의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좀비’ 라는 현상이 있다고 한다. 현대 일본의 기업들은 맹렬 사원들로 하여금 자신의 죽음마저도 잊게 만들어 신종 ‘좀비’를 양산시키는 마력을 갖게 되었음이 틀림없다.

 사흘 정도 뒤에 키무라한테 전화가 왔다.

 "자네가 준 영양제 말인데, 이상하게도 삼켜지질 않아."

 "그럼 휴가라도 받아서 좀 쉬도록 해. 자네는 쉬어야 한다구."

 오랜 오랜 휴가를...이라고 덧붙이려 했으나, 나는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휴가 같은 걸 받을 틈이 없어. 하루 쉬면 그만큼 일이 밀리니까 말이야. 그리고 지금은 전 회사가 '판매촉진운동'을 벌리고 있어서 목표량을 달성하려면 휴가는 어림도 없지. 매일 아침 조회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듣느라 한 시도 일에 대한 것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이럴 때 쉴 수야 없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의 회사 역시 '특별훈련'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전 사원이 회사 건물 옥상에 모여 '이번 분기에는 매상목표 몇 천 몇 백억엔을 달성하자 -- !' 라며 주먹을 치켜올리고 고함을 치는 장면을 상상했다. 아마 '죽어도 달성하자 -- !' 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키무라의 걱정을 하면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의사는 자유업이니까 아무 때나 쉴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밤낮이 없이 일해야 한다. 내가 있는 곳처럼 어느 정도 손님이 붐비는 병원이라면 숨 돌릴 틈도 없을 정도이다. 외래환자에다 왕진에다 밤중에 들이닥치는 응급 환자며 응급 전화 등등, 24시간도 아쉬울 지경이다. 사실 나 자신도 최근 들어 눈에 띠게 과로 기미를 느끼던 차였다.

 그날 밤, 나는 야근 도중에 너무나도 피곤해서 내 손목의 맥을 짚어 보고는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맥이 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서둘러 심장에다 청진기를 대어 보았으나 박동 소리 역시 들리질

않았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찌된 일인가. 나도 나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뭐가 뭔지 모를 심정으로 멎어 있는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해 보려고 애를 썼다. 전기 충격도 가하고 주사도 놓아 보고 인공 호흡도 실시해 보았다. 그러나 전기 충격을 아무리 가해도 다리 근육만 움질움찔할 뿐 심장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키무라나 나 뿐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신 옆에 있는 동료도, 그리고 당신도 죽음을 알지 못한 채 열심히 일벌레처럼 일만 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건강은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하다못해 우리가 이미 죽어 있는 좀비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면, 일 주일에 이틀은 쉬면서 즐겁게 놀 줄도 알아야 한다. 아무튼 일본인은 너무나도 바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