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의 계약

츠츠이 야스타카

 아예 악마하고라도 거래를 할 수만 있다면...

 요즈음 리시치는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리시치는 자신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로서는 열심히 노력을 했다. 그러나 자신의 덜 떨어진 머리로는 2류 공립대학의 문과를 중간정도의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행운이었다고 하지 않으면 안되겠지.

 그 점은 리시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리시치의 야심은 그 행운에 안주하고 있기에는 너무도 컸다. 그는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능하다면 악마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었다.

 졸업식이 임박해오고 있었으나 아직 취직을 못 하고 있었다. 구직난은 심각했다. 두서너 군데의 변변찮은 회사에 입사 원서를 보냈지만 아직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없다. 만약 서류 전형에서 떨어진 것이라면...

 만약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고향에 내려가서 농사를 지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고향에 갈 수는 없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설사 집에서 보내주는 돈이 끊어지더라도...... 농사일만은 절대로 하

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원대한 포부가 마치 와르르 소리를 내며 무참하게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리시치는 3평짜리 하숙방의 어두침침한 구석에서 가만히 화로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포자기한 상태로 푸석푸석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벅벅 긁으며 퇴색한 잠옷 어깨에 허연 비듬을 뿌려댔다. 차라리 일어나서 발이라도 굴러보고픈 심정이었다.

 리시치의 야심은 그 자신이 도리어 압도당하여 휘말려 들어갈 정도로 큰 것이었다. 그렇지만 하루하루를 달콤한 성공의 백일몽에만 취해왔을 뿐, 애써 심각하게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던 현실이 이제 눈 앞에 닥친 것이다. 바로 지금 그 현실이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가루로 만들려고 미친 듯이 날뛰며 휘몰아치는 파도가 되어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아아, 악마여 나와라. 너에게 내 혼을 팔아주마. 나는 현실의 비참함보다는 지옥의 고통을 사겠노라."

 마치 파우스트처럼 리시치는 절망적으로 그렇게 소리쳤다.

 갑자기 화로불 옆에서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연기가 피어나와 리시치는 쿨럭쿨럭 기침을 했다. 서둘러 창문을 열고 나니 비스듬하게 방바닥 위로 내리비치는 저녁 햇살 속에 악마가 서 있었다.

 "날 불렀나?"

 악마가 물었다.

 "...그래, 불렀지."

 리시치는 대답했다.

 "계약을 하고 싶나?"

 "...그렇다."

 악마는 서류를 한 장 꺼냈다.

 "여기에 서명해라. 이 세상이 네 생각대로 되도록 해 주겠다."

 

 대실력가로서 정계, 경제계, 문학계, 연예계에 군림해왔던 리시치는 아름다운 부인과 많은 측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곧 임종의 순간을 맞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죽은 다음의 세계에 대한 공포로 떨고 있었다. 이제 숨을 거두면, 옛날 악마와 계약했던 대로 지옥의 문이 검은 입을 열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리시치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살...살려줘...제발.."

 그 절규와 동시에 그의 머리맡에는 예전의 그 악마가 나타났다.

 "왜 그러나, 어째서 그렇게 떨고 있는 거지?"

 "나, 나는 죽고 나면 어떤 일을 당하는 건가? 가시 박힌 산인가? 피바다인가? 아니면 끓는 물에 빠지는 거야?"

 악마는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하는 게 아주 구식이군 그래. 당신은 그런 벌을 받을 정도로 나쁜 짓을 한 건 하나도 없잖아? 그리고 또 왜 지옥 같은 곳에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계약서를 자세히 읽지 않았군. 우리 현대의 악마는 영혼같은 무형물을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네. 인간의 욕망에서 분출되어 나오는 에너지를 원하는 거지. 생각 좀 해 보라구. 당신같이 머리 속에 아무 것도 안 들어있는 인간이, 실제로 사회에서 이 정도의 실력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당신이 충족감에 빠져있는 사이에 그 잉여 에너지는 우리들이 가져가고 있었던 거야. 그것이 계속 이자를 낳아서 이미 당신의 빚은 청산이 되어 있다네."

 그렇게 말을 한 뒤, 악마는 주위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자, 끝났습니다. 대도구 담당자님. 마지막 장면 병원무대, 장면번호 78793002를 철거하십시오. 연기자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리시치는 깜짝 놀라 주위를 돌아보았다. 가족이나 측근들이 모두 악마의 모습으로 돌아가 웅성웅성 거리며 나가버리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다 가짜였단 말이야?"

 지금까지의 만족스런 삶이 다 악마들이 연출해 낸 허구였단 말인가. 리시치는 소리를 질러댔다.

 "계...계약위반이다."

 "뭐, 그런 말은 하지 말자구요."

 제일 마지막까지 리시치의 곁에 남아있던, 그의 부인 역을 했던 악마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40년 동안 당신을 상대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고생이었다구, 알아요?"

 그렇게 말하고서 악마는 윙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