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 그레이 홍차

마루야마 사사구 (丸山 獻)

  월요일

  집에서 편히 지낸 주말도 끝나고 오늘부터 다시 출근하는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30분 동안 비좁은 공간에서 흔들리는 아침 전철은 여전히 지루하며, 역에서 회사까지 걷는 5분 거리는 상쾌하다. 눈앞에는 내가 일하는 회사가 있어, 그곳에 들어가면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상대로 일을 하게 된다. 가능하다면 조금 더 계속 걷고 싶다.

  주말에 푹 쉰 덕분에 오늘은 일이 잘 되었다. 지난 주 발견한 문제도 해결했으며 프로젝트도 끝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기분 좋게 회사를 5시 정각에 나와 귀갓길에 올랐다.

  
오늘은 일이 잘 풀려 기분이 좋으므로 설탕과 밀크를 넣은 얼 그레이의 홍차를 마시자.

  
화요일

  오늘은 회사에서 그리 기운이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쇼핑을 하자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졌다. 나는 토마토, 버질 소스와 파스타를 샀다. 집에 돌아와서 곧바로 물을 끓이고 파스타를 삶았다. 스파게티는 면을 삶는 것과, 캔에 든 소스를 데우는 것만으로 만들 수 있는 쉬운 요리이므로 나는 자주 만든다.

  알맞게 삶아진 파스타를 접시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빨간 소스를 붇는다. 얼마 전 가게에 갔을 때 바로 눈앞에서 잘게 갈아준 발메전 치즈를 뿌리면 완성. 토마토와 버질 소스로 만든 스파게티는 약간 새콤하여 매우 맛있으며 얼음물과 궁합이 잘 맞았다.

  
오늘은 스파게티가 맛있었으므로 디저트인 초콜릿과 함께 밀크를 넣은 얼 그레이의 홍차를 마시자.

  
수요일

  아침에 전철에서는 드물게 앉을 수 있었던 건 좋았으나, 오늘은 자주 앉을 수 있었던 귀갓길에서는 계속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나서 텔레비전을 켰다. 음악방송을 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룹이 나오나 했으나 끝까지 그들은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이라면 좀 뭐하지만 하나 마음에 든 가수를 발견. 그 아이는 귀엽고 노래도 매우 잘 불렀으며 노래 자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오늘은 새롭게 좋아하는 가수를 찾았으므로 시나몬 조각을 섞은 얼 그레이의 홍차를 마시자.

  
목요일

  상사가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 일하고 있는데 나는 꾸중을 들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내게 엎친 대 덮친 격으로, 작년에 헤어진 그녀가 약혼했다는 사실을 오랜 친구로부터 보내온 전자우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싫어져서 헤어진 것이 아니기에 조금 쓸쓸해졌다. 헤어진 그녀와의 기억을 되살렸기 때문이기도 하여 작업능률은 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쇼파에 앉고는 블루(BLUE)빛 감정(우울함 - 홍자 주)에 빠진 나를 발견했다. 이 마음을 잊기 위해, 왜 이런 상태를 '블루'라고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블루'는 물과 같은 색이며, 물은 차갑고, 차가운 마음으로는 기분이 좋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기분이 좋아질 수 없다.

  
오늘은 우울하기에 달콤한 잼과 브랜디를 조금 넣은 얼 그레이의 홍차를 마시자.

  
금요일

  회사에서 일이 끝나자 금요일이기도 하여 사이 좋은 두 동료와 바다로 갔다.

  바다는 회사에서 전철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 것은 오랜만이었으며, 거기에는 작은 모래사장이 있고, 파도소리가 그립게 느껴졌다. 우리들 세 명은 바닷가에 있는 공원에서 잠시 산책한 후 의자에 앉아 회사에서의 프로젝트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프로젝트에 관한 모두의 생각은 같았다. 비교적 잘 되어가고 있어 성공하리라는 것이다. 그 후 동료들은 술집으로 가자고 했으나 나는 그 제의를 거절했다. 둘과 헤어져 역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해변을 걸어 조금 피곤했으므로 오렌지 슬라이스를 두 개 넣은 얼 그레이의 홍차를 마시자.

  
토요일

  오늘은 점심때쯤에 일어나 친구 집에 놀러갔다.

  가는 도중에 역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자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는 남자아이가 불시에 말을 걸어왔다. 그 아이는 "형, 어디가?"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했으나 곧 "친구 집에 놀러가."라고 솔직히 말하자, 아이는 '그렇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엄마 쪽을 향해 걸어가려고 한다.

  갑자기 나는 조금 더 말을 하고 싶어져서, "넌 어디 가니?" 라고 조금 빠른 말투로 물었다. 꼬마는 이쪽을 보고 입을 천천히 벌리더니 "비밀."이라 말하고는 엄마 쪽으로 달려갔다. 몇 년만에 나눈 어린이와의 대화였다.

  
오늘은 오랜만에 어린이와 대화를 할 수 있었으므로 레몬 즙을 넣은 얼 그레이의 홍차를 마시자.

  
일요일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며 푹 쉬려고 했더니 점심때가 조금 지나 작년에 헤어진 그녀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이번에 결혼한다는 것과 이미 약혼했다는 것을 내게 전했다. 나는 "축하해."라고 말한 후 이미 친구로부터 전해들었다는 것도 전했다. 그 후 서로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를 말한 뒤 "그럼 잘 지내."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쇼파에 눕자 그녀가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녀는 전화로 감정을 억누르며 말하고 있었으나 사실은 기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기쁘다면 그것으로 되지 않았는가. 나도 기뻐하면 된다 하는 생각을 하고 나니, 왠지 찜찜했던 기분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어서인지 사라진 듯했다.

  
오늘은 그녀와 대화를 나눈 덕분에 기분이 맑아져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일할 힘이 생겼으므로 적갈색에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얼 그레이의 홍차를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