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우 (初雨)

마루야마 사사구 (丸山 獻)

  오늘은 평소보다 추웠다.

  10시에 타이머로 맞춰놓은 음악이 울리더니, 이어서 자명종 시계가 울리자 서둘러 난방을 켜고는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시계는 자동으로 5분마다 삐삐삑 하고 나를 깨우려 한다. 이불 밖은 아직 춥기에 전혀 일어날 마음은 없어 다시 잠을 잔다. 5분마다 일어나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즉, 5분마다 자는 것이기도 하기에 나는 잠이 드는 행복을 몇 번이고 맛보았다.

  그런데 방은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는다. 평소라면 네다섯 번 깼을 때에는 방이 따뜻해졌었는데.

  히터가 고장났나 했으나 켰을 때 히터에서 소리가 난 것을 확인했으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요금이 밀려 가스가 끊겼나 하는 생각도 했으나, 끊겼다면 가스가 타는 소리가 날 리 없었기에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일까 하며 얼굴을 들자 시계가 10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학교가 2주정도 전에 겨울방학이 시작하고부터 내가 깨는 시간은 엉망이었다. 밤에 자는 시간이 점점 늦어져, 거기에 비례하여 일어나는 시간도 늦어지기 마련이기에 요즘은 오후 2~3시에 깨는 일이 당연해져간다.

  오늘은 근처 목사님 댁에서 하는 송년회 때 먹을 국수를 가게문이 닫히기 전에 사러가야 한다. 오늘은 12월 31일. 가게가 몇 시에 닫힐지 모르므로 일찍 쇼핑을 마쳐야 한다고 어제부터 생각했었다.

  아직 이불 속에 있고 싶다는 절실한 욕망을 뇌에서 간신히 제어시킨 다음에 몸을 이불 속에서부터 꺼내어 히터를 확인해보자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단지 방이 다른 날보다 추웠을 뿐인 것 갈다. 거실에 가서 창 밖을 보자 하늘은 흐려 있었다. 흐린 하늘은 오랜만이다. 그렇군. 흐렸기 때문에 평소보다 추웠던 거다 하고 정신이 점차 들자 그제서야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머리로 이해되었다.

  홍차를 서둘러 마시면서 컴퓨터로 메일과 뉴스 홈페이지를 확인했다. 외국에 와서부터 일본의 뉴스는 거의 인터넷으로 입수하고 있다.

  뉴스 홈페이지에서 일본은 벌써 해가 지났다고 적혀있다. 2천년 문제는 거의 영향이 없었다고도 적혀있다. 2천년 문제, 이른바 Y2K문제는 거의 영향이 없을 거라 믿었던 나는 역시나 했다.

  조금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금붕어한테 먹이를 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추워서 제대로 된 윗도리를 걸쳤다. 여기 캘리포니아에서 이 시간부터 따뜻한 윗도리를 입어야만 하는 건 오랜만의 일이다. 올해 겨울은 따뜻하다고 한다.

  일반 슈퍼마켓에서는 일본 국수를 팔지 않기에 흐린 하늘 아래를 자동차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국 슈퍼마켓에 갔다.

  가게에 도착하자 주차장이 무척이나 붐벼, 연말에 모두가 쇼핑을 많이 한다는 것을 가게에 들어가기 전부터 알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긴 계산대에 줄을 서서 국수와 다른 것들을 사고는 밖으로 나오자 흐린 하늘은 훨씬 더 그 빛이 짙어졌다. 비가 올까 하며 가게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세운 자동차 문을 열려 하자 손에 물방울이 떨어진 듯했다.

  손잡이를 보던 얼굴을 들어보자 작고 흰 가루가 바람을 타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눈이 내린다, 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그냥 물이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의 이번 겨울에 내리는 첫 비였다.

  돌아가는 자동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눈이 내리는 것을 겪은 건 어디였더라 하며 떠올리려고 했다. 이쪽에서 겪지 못했다는 건 안다. 그러기에 마지막으로 눈을 경험한 곳은 일본일 것이다. 일본에서 눈이 내리는 것을 본 기억은 많다. 잠시 떠올리려고 했으나 결국 어떤 추억이 마지막 눈인지를 알 수 없었다.

  일본에서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더니 나는 갑자기 일본이 그리워졌다.

  2년 전에 일본에 있는 집에 간 이후로 일본은 가지 않았다. 가족, 친구, 동경의 추위, 일본인의 분위기, 전철, 편의점, 매주 다니던 교회 모두가 그리워졌다.

  . . . . . .

  추억에 잠기며 운전을 하고 있었더니 문득 자동차 앞면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내 차를 회색 빛으로 만들었던 먼지를 비가 씻어내고 있는 것이다. 곧 집에 도착했으나 나는 자동차를 차고 바깥, 비 맞는 곳에 세워놓고 빠른 걸음으로 현관을 향해 달려갔다. 문을 열고는 들어가기 전에 자동차 쪽을 돌아보자, 거기에는 전보다도 하얗게 된 차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