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소서

츠츠이 야스타카

 

 처음에 그것은 아내와의 말다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상할 정도로 느린 말투로 그녀는 며칠동안 쌓여온 불만을 줄줄이 토해냈다.

 "당신은 요즈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어요. 너무 빠른 말투로 뭐라뭐라 하고는 제가 대답할 틈도 없이 또 다음 말을 주절주절하기 시작하고, 마치 혀가 한 번 돌아가기만 하면 멈출 줄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신, 요즘 왜 그렇게 서둘러요? 연구소에서 퇴근을 할 때도 꼭 살인마에게라도 쫓기는 것처럼 정신없이 집 안으로 뛰어들어오질 않나, 서둘러 옷을 갈아 입고는 물 마시듯이 후다닥 밥을 먹질 않나, 도대체 뭘 하려고 저렇게 서두르나 보고 있으면 겨우 신문이나 집어 들고 읽고.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애들이 다 놀라잖아요. 바쁜 척 하는 것은 연구소에서나 하세요. 집안에까지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를 들여오면 견딜 수가 없어요. 아니, 왜 또 그렇게 덤벙덤벙 침착하지 못해요? 이것 봐, 또 시계를 보는군요. 아무리 시계를 봐도 똑같잖아요. 시간 가는 속도는 변함이 없다구요."

 그렇다. 바로 '시간'이다. 그는 시간이 가는 속도가 느려졌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내뿐만 아니라 연구소의 동료들도,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도, 왜 모두 저렇게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한 걸까.

 말을 모두들 너무 천천히 하니까 짜증이 나서 견디지 못하고 끝까지 듣기도 전에 대답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곧 다음 화제로 넘어가곤 하므로 상대방은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어제 동료에게 실험 보고를 받았을 때도 그랬다. 동료는 강제로 빼앗아갈 필요까지는 없지 않냐면서 그를 째려봤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

 그는 고민에 빠졌다.

 한 달 전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다. 아니, 최근까지도 미리 달려든다든지, 말을 빠르게 한다든지 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주 평범하게 보통 때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를 둘러 싼 주위의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 달 정도 되었다. 시계를 보고는 아직 시간이 가지 않은 것을 보고 갸우뚱거린 적도 있고... 그렇다. 한번은 깜빡해서 손목시계가 느리다고 생각하여 라디오 방송과 맞춰보려 하기도 했

지... 전철이 아주 느릿느릿 달리고 있어서 지각이라도 하는 줄 알고 짜증이 난 적도 있었으며, 아침에는 이상하게도 빨리 눈을 뜨기도 했다. 밤에는 또 밤대로 일찍 잠이 오고...... 도대체 이런 일들이 왜 일

어나는 것일까.

 아무튼 정상은 아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분명 정상이다. 머리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것은...... 모르겠다. 아무튼 예삿일이 아니다.

 그는 생각한다. 그러나 모르겠다. 그는 주위의 세계가 점점 자기로부터 떨어져가는 듯한 이상한 느낌에 시달린다. 그는 자기가 고독하다고 느낀다. 그 고독감은 점차적으로 강해지고 있다. 그는 자신이 정신병에 걸렸는지 의심을 한다. 병원에 가 보지만 나쁜 곳은 아무데도 없다. 그는 더더욱 혼란에 빠진다.

 

 그는 우주비행 연구소의 연구원이다. 그는 우주비행 연구소에서 정부 지원금을 받으며 우주비행사 훈련을 받고 있다. 그는 거기서 우주비행사로서 육체훈련은 물론, 성간항행학 (星間航行學)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무신론자였으며, 거친 성격에다 윤리 의식도 희박했다. 청소년 시절엔 불량소년들의 두목 노릇을 하며 여러가지 나쁜 장난도 했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는 좁디 좁은 지구에 권태를 느꼈으며, 넓은 대우주를 동경하다가 28살이 되어 로켓 조종사를 지원했다. 그는 자신의 부도덕적 성격이 살아날 길을 겨우 발견했다고 믿었다.

 대우주에는 지구와 같은 구질구질한 법률도 없고 도덕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그 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우주의지 뿐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바로 그 우주의지가 되고 말겠다고 굳게 맹세한 것이다.

 3년 전에 결혼하여 아이도 하나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자신의 야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치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5년 전 정부에선 대대적으로 우주비행사 공모를 실시했고, 전국에서 수 백 명이 시험조종사의 후보로 지원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첫번째 관문인 가속실험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심한 압력에 모두들 견디질 못하고 비명을 지르다 손을 들고 말았다. 개중에는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도 몇 명 있었다. 갈수록 난이도를 더해가는 가속실험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바로 그였다. 그는 실로 대단한 체력과 초인적인 인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뒤 몇 년 동안 그는 오직 한 명의 시험조종사로서 각종 인체 시험과 훈련 과정을 거치며 몸을 단련시켜 나갔다.

 그러나 그도, 한 달 전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이 알 수 없는 괴현상에는 견디지 못하고 노이로제에 걸리고 말았다.

 

 아내와 말다툼을 하고 나서 1주일이 지났다.

 그는 자기 자신의 생활리듬이 주변 외계 환경의 그것과 철저하게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1시간은 외계의 2시간에 상당했으며 외계의 하루는 그의 한나절 꼴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에 비하면 두 배 가량 느린 속도로 말을 하거나, 움직이거나, 생각하거나, 또는 잠을 잔다. 그는 점심때만 지나면 벌써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훈련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지만 어떤 가혹한 조건의 실험에도 아무 고통 없이 임하게 된 그는, 이제 반대로 바깥 세상과의 접촉이 심한 고통을 동반하는 의무로서 다가오는 것이다. 바깥 세상의 어떤 일이든 그 진행을 그의 리듬과 맞추려고 하면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부인도, 아이들도, 심지어 연구소에서 매일 대하는 동료 연구원들도 그의 숨 돌릴 틈 없는 동작과 총알처럼 빠른 말에는 전혀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저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떤 수단으로도 그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지경이 되어버리자,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로서는 무시당하는 것이 차라리 고마울 정도였다. 결국 이단자는 그 자신이었으므로, 주변 환경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고통에 비하면 차라리 남들과 단절된 고독이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고독감에 서서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그와 주변 세상과의 속도 차이는 가속도적으로 벌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요즈음에 들어서야 그는 이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설명 같은 것을 한 가지 떠올렸다. 이것은 내가 받았던 그 실험... 초현실적인, 인간 능력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그 훈련...이 원인인 것 같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만한 지식은 없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 가속실험으로 인해 보통의 생활 리듬과 그것에 동반하는 진행속도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나의 소원대로 단순한 지구인의 존재를 탈피하여 우주의지에 한 발자국 접근하게 된 것이군. 그렇다면 슬퍼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할 일 아닌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는 역시 고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주의지의 길을 걸어 가면서도 그에 대한 세상의 반응을 그때그때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격려해주며 함께 이 길을 갈 동반자를 갈망했다. 그는 현재의 상태대로라면 미쳐버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자신 한 명만이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그에겐 전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정지하고 있는 듯 느릿느릿 발을 옮기고 있는 사람들은, 앞에 뭐가 얼핏 스쳐지나간 듯 해서 두리번거리다 이미 100미터 앞을 걸어가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갸우뚱거리며 멍하니 보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 뒷모습마저도 그들의 눈에는 정확히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제 굳이 횡단보도로 건널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흔들흔들거리며 걸어 오는 자동차를 슬쩍 피하면서, 맞은 편 보도에 도달하는 사이에 느껴지는 스릴감은 좀 남아 있어서 웃기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동차의 속도도 마치 달팽이같이 느릿느릿,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걸음걸이가 되고부터는, 그는 마치 공허한 회색빛 무생물들만이 늘어서 있는 세계에 있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갈수록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갖가지 모습을 취한 마네킹이 되어 온 시가지에, 온 동네에 서 있을 뿐이다. 뛰고 있는 사람은 양 다리를 공중에서 벌린 채 오랫동안 허공에 떠 있다. 개나 고양이는 청동으로 만들어 놓은 인형처럼, 그리고 자동차는 마치 큰 파노라마 모형과도 같이 온 동네에 덜컹덜컹 굴려다 놓았다는 느낌이다.

 그는 얼마 전부터 연구소에도 나가지 않았다. '얼마 전' 이라는 것은 닷새 전을 의미하지만, 그에게는 그 닷새가 두 달 이상으로 느껴졌다.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온 동네를 빈둥빈둥 한 시간쯤 걷고, 아무데나 호화 호텔에 들어가서 또 한 시간 정도 잠을 잔다. 잠을 깨도 주변의 변화는 거의 없다. 그는 마음을 굳게 가지자고 자신에게 타일렀다. 절대로 발광 같은 건 일으키지 않는다!

 그는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있었던 과학으로부터 배신 당한 기분이 되어, 고독과 세계의 파멸감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의 마음 속에서는 다시 옛날 소년 시대의,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부도덕한 충동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부도덕함은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부도적이라고 불리우는 것도 아니었으며, 물론 악(惡)도 아니었다.

 조용한 은행 안에서 온갖 동작을 취한 채 가만히 정지해 있는 은행원들. 그들의 손에서 빳빳한 새 지폐를 빼앗아 보았자 반응은 전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는 돈 그 자체가 필요 없었다.

 레스토랑에는 식탁마다 화려한 요리가 차려져 있었지만, 그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단지 먹는 모습만 취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시내의 가장 좋은 호텔에서는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명사들, 아름다운 부인들이나 미녀들이 곱고 우아한 모습으로 한껏 차려 입은 채 모여있었다. 마치 영화 장면을 입체화한 것 같은 분위기 안에서 그는 혼자 마음껏 돌아다니며 먹고 마셨다.

 그는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여러 가지 장난을 쳤다.

 길가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어 길 바닥에 뿌려보기도 하고, 바삐 걷고 있는 두 남자를 서로 마주보게 해 놓기도 하고, 공원의 나무 그늘에서 남자와 포옹하고 있는 젊은 아가씨를 빼 낸 다음 대신에 신문 파는 할머니를 데려다 안겨놓기도 했다. 침실의 미녀를 끌어 안고 나와서는 옷을 벗긴 채로 번화가의 네거리에 던져놓기 등등 그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장난을 쳐 보았지만, 그래도 쓸쓸함을 달랠 수는 없었다.

 그런 장난은 반응, 또는 반응을 예측하며 기뻐하려는 것일 뿐, 반응이 전혀 없는 장난이란 이미 '장난'으로서의 가치가 없으며, 따라서 더 이상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뿐이다.

 그는 그러자 심한 파괴충동을 갖게 되었다.

 그는 괴성과 고함을 질러대며 각목을 들고 온 동네를 두드려 부수기 시작했다. 경찰의 권총을 뽑아 건물 창이나 전시장의 유리들을 닥치는데로 쏘아 깨고, 자동차들끼리 마구 부딪히고 뒤집어 엎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는 볼품없이 비참한 모습이 되었다.

 호화스런 옷을 입고, 손가락 마다에는 다이아반지를 끼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깎지도 않아 푸석푸석한 채로 한 손에는 권총, 한 손에는 각목을 든 채 '나는 신이다!' 라고 소리 지르며 온 시가지를 파괴해 가는 사나이.

 그것이 그 스스로 원했던 '우주의지', 그 자체의 모습이었을까?

 그의 행동은 자기 자신 이외의 세계에서는 영문 모를 돌발 사고가 되어버릴 뿐, 그는 영원히 고독하다.

 그는 마침내 시내의 도로 한 복판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아스팔트 위를 뒹굴면서 파괴적 충동을 만족시킨 기쁨에 젖어있었다.

 온 몸이 지쳐있어서 몹시 피곤했다. 그는 뒹굴면서 한동안 괴성을 질러댔지만, 이윽고 곤히 잠에 취해들고 말았다.

 문득 그는 오른쪽 넓적다리와 어깨에 심한 압박감과 통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눈 앞에는 자신의 몸에 막 올라타려는 대형 트럭의 바퀴가 있었다. 그 트럭은 그가 길바닥에 드러누울 때 아직 5미터정도 앞에 있던 차였다.

 그는 서둘러 일어나려고 했으나 바퀴가 그의 어깨와 오른편 다리를 꽉 누르고 있었다. 왼손으로 바퀴를 밀어보려 했지만 물론 불가능했다.

통증은 갈수록 극심해졌다.

 그리고 그 대형 트럭은 움직이고 있는지 어쩐지 모를 정도의 느린 속도로 천천히 전진하면서, 그의 몸을 야금야금 눌러오고 있는 것이다.

 그 때,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누군가에게 마침내 처음으로 간절한 비명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신이시어, 제발 살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