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체시대

코오사이 타다지

 

100 미터 정도 앞에 신호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에 뜨이는 순간 파란색으로 바뀌었지만 늘어 선 자동차의 줄은 아주 조금밖에 움직이지 않았다. 이대로 간다면 저 신호등을 지나기까지 적어도 5분은 걸리겠지. 아무튼 사거리를 지나서도 여전히 차가 꽉 막혀있을 테니까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어도 앞으로 나가지는 못한다.

나는 차안에서 하는 일에 질려 있던 참이었다. 담배를 피려고 담배 갑을 집었는데 몇 개비 남아 있지 않았다. 잡동사니 상자에 넣어 두었던 예비용 담배가 있을 텐데... 아차차, 지금 피고 있는 것이 그 예비용 담배지. 조금 아까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담배 갑을 뜯었잖아.

미리 사 둬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담배 가게가 있었다. 나는 시동을 끄고 자동차에서 내렸다.

"죄송합니다만, 잠시 담배 좀 사 올 테니 잘 부탁합니다."

나는 뒤의 자동차 운전사에게 말했다.

"기어는 중립에 있고 핸들은 직진 방향, 그리고 핸드 브레이크는 안 걸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안심하고 다녀오세요."

뒤차의 운전사는 얼굴을 들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됐다. 신호등이 바뀌고 자동차의 줄이 움직여도 뒤차가 내 자동차를 밀어서 앞차와의 사이를 좁혀 줄 것이다. 나는 안심하고 담배를 사러 갈 수 있다.

"담배 다섯 갑이요."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담배를 봉지에 넣고 성냥을 한 개 넣어 주었다. 담배 값을 치르고 거스름돈을 받으면서 가게를 돌아보다가, 아들에게 선물을 사다 주기로 한 약속이 생각났다.

"가와사키에서 나온 오토바이의 프라모델, 있어요?"


"W1S 말인가요? 아니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마하 III 입니까?"

"마하 III이 좋겠네요."

"경주용 오토바이 말씀이죠? 요즘 많이 나가요."

할머니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많이 알고 있었다. 포장한 프라모델을 받아들고 가게를 나서니 내 자동차는 30미터 정도나 앞으로 나가 있었다. 나는 뒤의 운전기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담배도 사고 아들 선물까지 살 수 있었어요."

"아아, 당신도 프라모델입니까?"

그는 내가 안고 있는 상자를 보며 말했다. 포장지가 얇아서 속에 있는 오토바이 그림이 내비치고 있었다.

"네, 가는 길에 만들어 주려고요."

"저는 비행기예요."

그는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뒷좌석 천장에 한 가닥 실에 매달린 모형 비행기들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제로센 전투기군요."

"예, 모두 제로센입니다. 갈은 제로센이라도 회사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요.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재미있죠. 이것이 타미야에서 나온 거고, 이건 레벨이고, 또 이건 모노글래스입니다."

그는 매달린 모형 비행기들을 가리키며 설명해주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하세가와에서 나온 거지요."

"비행기는 그렇게 매달아 놓을 수 있어서 좋군요. 하나 만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죠?"

"으음, 이 세 개는 어제 아침에 만든 겁니다. 보통 하루에 두 개는 만들 수 있죠. 오늘은 무스탕을 만들까 합니다. 좋은 자료가 나왔다더군요."

내 차 앞에 틈이 생겼다. 내가 돌아가려 하자 그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밀어드리지요."

그는 자기 차의 시동을 걸고는 천천히 내 자동차를 앞으로 밀어 주었다.


옆 차의 운전사는 조수석에 체스판을 두고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말을 옮겨 놓더니 무전기를 집어 들고 말했다.

"비숍을 퀸-나이트 5번에."

잠시 뒤, 잡음과 함께 무전기에서 응답이 들려 왔다.

"루크를 킹-비숍의 4번에."

그는 무전기에서 얘기한대로 말을 옮기고는 다시 이마에 주름을 지으며 생각에 잠겼다.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헬리콥터가 날아왔다.

"자신의 차를 이탈해서는 안됩니다. 운전중에는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 또는 비디오를 봐서도 안되며, 프라모델을 만들어도 안됩니다. 거기 앞에서 네 번째 차 옆에 서 있는 사람, 차에 들어가시오!"

나보고 하는 소리군.

"저는 그럼 이만."

나는 뒤차의 운전사에게 인사를 하고, 헬리콥터에도 손을 흔들어 보인 뒤 내 차의 문을 열고 운전석으로 들어가 앉았다. 오른쪽 차의 운전사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끄러운 헬기군요."

그는 그리고나서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뜨개질을 계속했다. 분홍색 털실이었다.

"따님 건가보죠?"

아마도 귀여운 스웨터가 되겠다고 생각하며 물어보았다.

"아니, 마누라의 내복이에요. 이제 서서히 추워지니까요."

그는 눈을 들지 않고 대답했다. 대바늘로 요령 있게 움직이며 꼼꼼하게, 그리고 빠른 속도로 짜고 있었다.

"애처가시군요."

"아닙니다. 마누라 덩치가 너무 커서 맞는 사이즈가 없어요."

그는 그 말을 하고서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보니 왼쪽에 서 있는 자동차의 운전사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비디오 테이프 좀 바꿔보시지 않겠어요? 저도 맞바꾸면서 얻은 건데, 포르노라서 집에 가지고 갈 수가 없어요."

"네, 그러지요."

나는 잡동사니 상자에서 잡히는 대로 테이프 하나를 집어들고 그 남자의 것과 교환했다.

"이거 아주 끝내주는 거예요. 아침부터 두 번 봤는데, 걸작이던데요?"

남자는 덧붙였다.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시동을 걸고 앞으로 갔다. 신호등까지는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자동차 세 대만큼은 움직였으므로 다음 파란 신호 때에는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른쪽에 있던 뜨개질을 하던 남자가 불렀다.

"그 비디오 테이프 팔지 않겠어요?"

테이프를 교환하면서 나눈 얘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테이프를 그냥 건네주었다. 지금 나에게는 불필요한 것이다. 나는 차안에서 따로 하는 일이 있으니까.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나는 천천히 차를 몰아 사거리를 건넜다.

담배에 불을 붙인 뒤, 한 모금 내뿜었다. 보랏빛 연기가 창문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갔다. 나는 크게 기지개를 켠 다음 조수석에 놓아두었던 원고지를 집어들었다. 80퍼센트 쯤 완성된 원고이다. 오늘 안으로 편집부에 갖다 주어야 한다.

나는 짧은 원고는 자동차 안에서 쓴다. 아니, 자동차 안에서가 아니면 쓸 시간이 없다. 오늘은 원고를 가져다 준 뒤, 돌아오는 길에 오토바이 모형을 조립해야겠다.

나는 펜을 들고 원고를 계속 써 나갔다. 제목은 [초정체시대]. 잡지에 게재할 초단편 소설이다. 편집부에 도착할 때까지는 완성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