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간 미래인

홍성필 (1993)

 따분한 아침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밖을 보아도 언제나 같은 풍경이었고, 시야에서 왕래하는 사람들에도 이제는 지난날과 같은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되풀이되는 인생에 권태를 느끼기에는 아직도 어리다는 것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모든 사물의 효율성을 최대한도로 끌어 올려 놓은 이 세상에서는 이미 내가 할 일이 존재하지 않고 있었으며, 권태를 느끼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사람들 사이의 교류도 높아져가나 그들 사이에도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은지 오래이다. 많은 천재들에 의해 과학성과 효율성, 그리고 산업화의 극지를 이뤘다고 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미 그것들의 빛은 퇴색할 길 밖에 남겨놓고 있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사람들이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사람들은 자신에게 쥐어진 자유만을 즐기고 있었으며, 그런 자들을 보면 실존주의에서 나온 말과도 같이 자유의 마지막 보루인 '자살할 수 있는 자유'만을 즐기고 있는 듯하게도 보였다.

 이런 권태스럽고 끔찍한 사회에서 그래도 20년이나 살아올 수 있었다는 나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낄 때도 없지는 않았으나,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살 가능성을 즐기는 것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름 아닌 내가 더욱 혐오스러워졌다.

 우리는 왜 이 지경까지 발전을 해버리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달리 방법을 모색할 길은 없었는가. 때로는 지난 세월의 선각자들을 원망할 때도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평가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은, 내가 아는 한 인류역사상 지금 만큼 효 율적인 시대, 과학적인 시대가 존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유사이래, 다시 말해서 굴아지역에 산업문명이 싹트기 시작하고부터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많은 인물들의 등장으로 전세계를 짓밟고 지나갔었다. 이리하여 비대해진 굴아왕국과 그 뜻을 이어받은 미지알제국, 그리고 약간은 성격을 달리한 서바리왕국의 대두로 이어지는데, 그런 과거에 비하면이야 지금이 훨씬 더 희망적이고 과학적인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인들은 그 시대를 '아는 것이 많았던 약진의 시대'라고 비웃었으며, 그 다음 시대를 '모르는 것을 모르는 침체의 시대', 그 후를 '모르는 것을 깨달은 방황의 시대', 그리고 마지막을 '아는 것도 모르는 환희의 시대'라 표현하기도 했다.

 갑자기 나는 이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르는 모험을 하기로 결심하여, 이미 폐기처분 되기 일보직전의 타임머신인 'Sazpear'를 창고 깊숙히로부터 끌어냈다.

 그렇다, 과거로의 여행을 용기를 내서 해보려는 것이다. 타임머신의 개발은 과거로의 여행으로부터 나오는 희생자가 날로 증가함에 따라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금지령이 선포되었다. 그 이전에는 기술의 발달로 조금씩 더 많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어, 새로운 상품이 나올 때 마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으나, 지금은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는 멍청한 인간들은 없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시대를 참을 수 없었던 그것만은 아니고, 다만 내가 '침체의 시대' 때의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지나 않는가 하는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며, 한 번 과거로 가서 나의 이토록 암울한 심정을 해소하고 싶었다. 다행이 타임머신의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의 기술은 '침체의 시대'까지 갈 수 있을 정도였으며,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당시 서바리왕국 근방에 있기는 하나 미지알제국의 영향권에 있던 한나라에 가기로 결심을 했다.

 과거로 가는 생각을 하기는 쉽고, 또한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도 쉽다. 그러나 오랜기간 동안 사용하지 않아, 낡은 Sazpear의 설비를 손질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침 8시 30분부터 시작한 작업은 다음 날 오전 11시 넘어서까지 계속되었다.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고나 할까. 이제는 제법 옛 빛깔이 되살아오는 듯하다. 과거로 가기 위해 짐을 따로 싸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돈? 그런 것을 가지고 가 봤자 소용없다. 원시적인 화폐환률가치가 판을 치는 시대에 지금의 화폐가치를 억지로 적용시키려는 사고방식 자체가 가소롭다. 배낭에는 간단한 식량과 그리고 낡아빠진 적외선 사진기를 집어 넣고, 과학적이고도 내열성이 뛰어난 복장과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므로 첨단 무기를 허리에 장착하고 가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앉는 타임머신은 약간 불편하기는 하였으나 의자로부터 다리로 전달 해오는 차가운 느낌이 어딘지 모르게 안락감을 느끼게 해 준다. 눈앞에 보이는 복잡한 기계들은 순간적으로 나를 당혹하게 하였으나, 점차 옛 기억들이 되살아 났다. 헬멧을 쓰고 조종석 개폐 스위치를 누른 다음 안전벨트를 매었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열량을 확인한 다음 보조엔진을 가동시켰다. '휘이잉'하 는 소리와 함께 약간의 진동이 온 몸으로 전달된다. 대략적으로 목적년수를 '침체의 시대'로 입력시킨 다음 기체의 좌우균형을 점검하고, 보조엔진에서 주엔진으로 조금씩 전달해가는 플라즈마 용량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보조엔진으로부터 주엔진으로의 플라즈마 열량공급 120%'

 드디어 출발의 때는 왔다. 강하게 박동하는 심장을 억누르며 땀으로 젖은 왼 손 레버를 힘껏 밀었다.

 '위이이이이잉!'

 '주엔진'이라고 쓰여진 렘프가 깜빡거리기 시작하고 터어빈이 돌아가는 소리가 기내에 울 려퍼진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렘프는 깜빡거린다. 아니, 왜일까. 터어빈이 회전하는 소리는 작아지고, 주엔진 시동 주파수까지도 약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위이이이잉...잉.....잉..........'

 이상하다. 아무래도 기계가 너무 낡았나 보다. 여기서 벌써 이렇게 열량을 낭비하다가는 최악의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과거에서의 열량 재공급이란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머리에서 이마로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착잡한 심정으로 씻어내며, 보조엔진과 주엔진의 열량공급상태를 다시금 점검하고 플라즈마 열량상태와 여타기관의 Testing을 해 보았으나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해보자'

 입고 있던 첨단과학제복은 온몸에서 쏟아지는 땀을 빨아드리기에 바빴다. 나는 열량의 보조엔진으로의 주입상태를 확인한 다음에 보조엔진 가동스위치를 눌렀다. 다시 기내는 보조엔진 가동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전자판에는 주엔진으로의 열량공급 120%라고 쓰인 빨간 글씨가 들어왔다.

 너무도 긴장된 나머지 번거롭게 느껴진 허리에 찬 첨단무기를 좌석 옆에 묶어 두었다. 또 다시 왼손으로 레버를 힘껏 밀었다.

 렘트가 깜빡인다. 주엔진 주파수가 상승해간다. 시동소리가 점점 강하게 귀를 찌른다. 심장의 박동소리는 더욱 크게 울린다. 모니터에는 정보들이 차례차례 올라가기 시작한다.

 '주엔진으로의 열량공급완료.'

 '가동상태 양호'

 '주엔진 기동터어빈을 가동시킵니다.'

 '터어빈 회전속도 165 m/s : 양호.'

 'System & Option check 완료.'

 나는 왼손으로 보조엔진 레버를 내리고 재빨리 떨리는 오른손으로 주엔진 시동레버를 밀었다.

 'Sazpear 발진!'

 본격적으로 기내가 좌우상하로 흔들리면서 기체가 지상에서 1m 가량 떠오른 다음 오른쪽으로 뒤집어지며 회전을 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성공이다'

 정상적인 작동을 시작했다는 기쁨과, 과거세계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들이 뒤범벅이 되어 긴장한 나는 입안이 바싹 말은 것도 모르고 있었으며, 오로지 앞 광경과 모니터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차원과 차원을 연결하는 풍경이 보이면서 나는 서서히 실신을 하게 되겠지...'

 그렇다. 한 차원을 벗어나 다른 차원과의 연결통로로 들어갈 때에는 대부분이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실신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러한 현상이 더욱 탑승원을 두렵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가능한 한 오래 버텨보겠노라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광행차현상이라도 일어났는지 주위의 모습들이 조금씩 만곡해서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절대속도인 광속을 뛰어넘어 청색편위형상이 일어남과 동시에 차원을 넘기 시작한다.

 시공을 넘을 때의 바깥 모습에는 과거의 일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물론 이런 것이 직접 눈으로 보면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눈 앞을 지나가는 것을 순간적인 느낌으로 인식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늘을 나는 성간우주완행선, 금성에 있는 식민지, 아득히 먼 시대의 세기말사건 등등... 말로만 듣던 과거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귀에서는 쉴새 없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머리가 점점 어지러워진다. 그리고......

 '......응? 여기가 어디인가.'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서둘러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말로만 듣던 폐기가스를 뿜어내며 앞으로 굴러가는 것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이곳, 여기가 바로 그 침체의 시대란 말인가?'

 나는 서둘러 건물에 걸려있는 전광판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PM 2:20. 여기 지금 시간은 오후 2시 20분이란 말이겠군. 일단 밖으로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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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리리이익!

 1993년 2월 21일 오후 2시경. 광화문 네거리에서 갑자기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길을 가던 사람들의 시선은 그 쪽으로 집중되었다.

 그 사람들이 본 것은...

 쇠붙이 덩어리 옆에 두 다리를 딛고 우뚝 선 호랑이가죽 차림에 곤봉을 든 한 원시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