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을 포기할 때

홍성필 (1994)

 "저, 혹시..."

 형규가 동료들과 학과 건물 근처를 거닐고 있을 때, 어떤 여자 한 사람이 종이 쪽지를 들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혹시 이 곳 분이신가요?"

 학과 건물을 가리키며 그 여자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외모로 미루어 벌써 졸업한 나이 같이 보였으며, 아마도 이곳에 다니는 누군가를 찾으러 온 것 같았다.

 "예,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눈치 빠른 최형석이 말을 꺼냈다.

 "저, 이명환이라는 사람 아시나요? 82학번인데......"

 "82학번이요? 그럼 대학원생인가요?"

 "아니요. 학부만 졸업했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아직 학교 근처에 살고 있데요. 혹시 어딘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일단 행정실에 가보시죠? 그 곳에는 주소도 있을텐데..."

 "예, 가봤는데요. 거기엔 고향 주소 밖엔 적혀있지 않았어요."

 "그럼 그 주소로 전화는 걸어보셨나요?"

 "예...그런데 고향 전화번호도 바뀌었나봐요."

 나이가 형규들과 가까운 사람도 아니며, 또한 들어보지도 못한 이를 찾는 것이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사람들도 많은 형규의 과에서 어떻게 이미 졸업 한 사람을 찾는단 말인가. 셋은 얼마동안 있을지도 모르는 방법을 말 없이 찾고 있었다.

 "야, 민우야, 너네 동아리에 혹시 84정도 되는 선배 있잖아. 연락할 수 없을까?"

 형규의 말에 류민우는 수첩을 재빨리 꺼내어 뒤지기 시작했다.

 "84학번 형하고 85학번 형은 있다. 잠깐만 전화 좀 걸고 올께."

 류민우는 학과 건물 내에 있는 공중전화로 뛰어갔다.

 "죄송해요. 처음 보는 분들한테......"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런데,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얼마 동안 시간이 흘렀을까. 민우가 헐래벌떡 뛰어왔다.

 "어땠어? 알아 냈니?"

 "85학번 형은 모르겠다고 하고 84학번 형은 전화를 안받네? 어쩌지?"

 "지금 시간에는 위에 있는 사람들도 다 집에 갔을텐데......"

 5시 10분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보며 형규는 말했다.

 "그럼 할 수 없죠. 그것보다도 혹시 이후에 다른 약속 같은거 있으신가요?"

 이 말에 세 명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만약에 없으시다면 술이나 한 잔 하러 갈까요?"

 "그러죠. 뭐. 그러다가 다시 84학번 형한테 전화를 걸어보면 되겠네요."

 교문 앞에 있는 정류장까지 오는 동안, 세 명은 그 여자를 보며 여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옛 친구일까? 또는 단순한 친척일까? 아니면 다른 깊은 사연이 있을 것일까?

 "저, 실례지만 찾고 계신 사람과는 어떻게 되는 분이신지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평상시에는 별로 말이 없는 태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옛날 친구예요."

 여자는 순간 머뭇거리더니 쓴 웃음을 지으며 간단히 대답했다. 그들은 버스를 타고 고개를 내려와, 정류장 근처에 있는 한 맥주집으로 들어 갔다. 그 곳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그 여자에 대해서 알게된 점은, H 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2년 동안 갔다 온 후 옛 친구를 만나려 한다는 것뿐이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이제 맥주집의 손님도 제법 많아져서 시끌시끌한 분위기 가 된지 오래이다.

 민우가 일어섰다.

 "야, 나 잠깐 가서 전화 걸고 올께. 지금쯤이면 들어왔겠지."

 이 말을 들은 그 여자가 말했다.

 "그럼 우리도 이만 나가보도록 하죠."

 "그러지 마시고 전화를 걸고 올 때까지 기다리시는게 어떻겠어요? 아직 안들어 왔을 지도 모르잖아요."

 "아니요. 만약에 아직 안들어 왔으면 포기하죠. 괜찮아요."

 조금은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는 세 명을 오히려 위로하듯 그 여자도 일어섰다. 밖에 나와 민우가 수화기를 들고, 우리는 그 주위에서 대화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여보세요? 형이에요? 이제야 들어왔군요. 형 혹시 82학번에 이명환이라는 사람 아세요? 아, 그래요? 형은 모르고요? 그럼 그 형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죠? ...... 알았어요. 그럼 다음에 뵈요."

 전화를 끊는 순간 답답함에 못 이겨 태호가 물어보았다.

 "야, 모른데?"

 "응, 이 형은 모른다는데 다른 형은 알지도 모른데. 그 형네 집에 전화를 걸어보지."

 전화를 거는 동안 또다시 침묵이 흐른다.

 "여보세요? 저 밤 늦게 죄송합니다만, **형 후배인데요. 혹시 82학번에 이명환이라는 분 아시나요? 지금 그 분을 찾고 계시는 분이 계셔서요. 예, 여자분이세요. 옛 친구분이라고 하시던데......"

 이 말을 듣자 그 여자가 수화기를 달라는 손짓을 한다.

 "저, 잠깐만요. 그 분과 전화를 바꿀게요."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이명환씨를 아신다고요? 지금 어디 살고 있지요? 네 ...네 ... 네에..."

 대답만으로는 어떤 말이 오가는지 짐작을 할 수 없었기에 셋은 초조하게 그 여자의 얼굴 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네에...네, 알겠습니다 ... 괜찮아요 ... 네, 고맙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전화를 끊고 나오는 모습이 어딘가 기운이 없어보인다.

 "어떻게 되셨죠? 어디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나요?"

 민우의 질문에 그 여자는 기운 없이 대답을 한다.

 "예, 하지만 이제 만날 필요가 없게 되었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그 여자의 대답에 세 명은 당황한 모습으로 서로를 쳐다 보았다.

 "아니, 만날 필요가 없게 되었다니요?"

 형규의 질문에 그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을 했다.

 "작년에 결혼했데요."

 아직 쌀쌀한 바람이 가시지 않은 어느 늦겨울 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