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홍성필 (1989 ?)

그 날은 그녀가 약속을 취소함으로서 하루의 일정이 비게 되어 그를 찾아 갈수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나, 나와는 각별한 사이였다. 그리고 그가 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러한 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가 자기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이유로서 경찰에서는 다음 두 가지를 내세운다. 첫째, 그는 오래 전부터 폐렴으로 시달려 왔었으며 둘째, 사람들에게 진 빚이 500여만 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제3자를 납득시킬 만한 이유로서 위의 사실을 인정한다.

물론 그의 자살원인을 위와 같이 발표한 경찰 측도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인이 긍정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가 오로지 그러한 이유만으로 자살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나의 단순한 고집일까? 아니다. 누구보다도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판단이다. 그와 같은 민감한 감정의 소지자가 오로지 위와 같은 이유만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을 리가 없다.

그날 내가 그의 집을 방문한 것은 오후 3시를 조금 지났을 때라고 생각된다. 대문은 언제와 같이 잠겨져 있었으나, 나는 그를 제외하고 대문열쇠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문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갔다.

남이 들으면 상당히 수상하다고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다른 사람이 그를 찾는 것을 너무도 꺼려하며, 더욱이 게을러서 아무리 내가 왔다 하더라도 그가 나와서 문을 열어 주는 것조차도 귀찮아하여 이렇게 나에게만 그의 집 열쇠를 준 것이다.

나는 그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조용조용히 발을 옮겨갔다. 가볍게 노크를 하고 문을 열으니, 그는 고요히 책상에 엎드리고 있었으며 입에서는 약간의 피와 침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값싼 볼펜이 쥐어져 있었으며 깨끗한 종이에는 나에게 쓴 유서가 남겨져 있었다. 당연히 적지 않게 당황을 했지만, 나는 그 종이 한 장을 찢어 곱게 접어서 윗옷 주머니 속에 넣고 밖으로 나와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

그를 만나게 된 것은 친구가 소개를 해주었을 때부터였다. 그 친구 말에 의하면 나와 성격이 비슷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꼭 소개를 시켜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결국 친구와 함께 그의 집에 갔는데, 막상 그와 이야기를 해보니 그는 철학과 문학뿐만이 아니라 물리학과 수학, 나아가서는 음악과 미술에 대해서도 박식하였고 각각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초면에도 불구하고 무려 다섯 시간을 그와의 대화 속에서 보냈으며, 그 날 이후로는 시간이 허락을 한다면 언제나 그의 집을 방문하곤 하였다.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그의 성격에 대해 의외라고 느낀 것은, 그는 생각보다 상당히 예민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그것들의 반응을 아주 민감하게 받아 드린다는 것이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그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그는 방구석에서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방에서 창문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마당에 있는 나무 위에 참새 두 마리가 앉아 있었는데, 그가 참새를 불렀더니 날아가 버렸다고 하여, 그것이 너무나도 섭섭해서 그러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말을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그러나 그는 진지했다.

며칠 전에 자살을 한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내 앞으로 씌어진 유서를 보면 '......나는 그녀의 웃음이 무서웠다. 왜 그녀는 나를 보고 그렇게 웃는 것일까. 마치 동물원의 철조망에 갇힌 원숭이를 보듯 그녀는 아주 유쾌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는다. 그래, 나는 어차피 그런 존재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아니, 확실하다. 나는, 그러한 젊은 아가씨에게 있어서는, 이 세상에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왜 그런 존재이어야만 하는가. 모르겠다...나는,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아니...아냐...나는...나는...아니 맞아, 맞다구, 맞는 말이야. 나는 그런 존재야. 나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어......'

그 유서를 내가 없애버린 것은, 이런 유서를 보면 사람들은 아마도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그를 매도할 것이며, 만일 경찰에게 이 유서를 보여주었더라면 그는 정신분열증이며 이로 인하여 발작을 일으켜 자살을 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나의 추측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폐렴 때문에 자살을 했다고 하는 것이 그래도 조금은 듣기가 괜찮다고 여겨졌다.

결국 나는 그의 유서를 한 번 읽고는 주머니 속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어 불로 태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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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냐?" 형사는 타자기를 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물었다.

"예."

그 때 뒤쪽에서 몸집이 큰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 왔다.

"권 형사, 조서는 완성되었소?"

"예, 지금 막 끝났습니다."

"어디 보여줘봐. 이게 뭐야? 미친놈 같으니라구..."

"그런데 그 사람을 살해한 범인이 이 놈이 분명합니까?"

"여보게 권 형사. 피해자의 부엌에 있던 약병에는 이놈의 지문이 있었고, 피해자 옆에 놓여 있던 컵에는 이놈의 지문과 피해자의 지문이 같이 있었으며, 약병에는 수면제가 들어 있었는데 그 컵에는 그 수면제가 잔뜩 들어 있었다네. 그런데 뭐가 부족해?"

"그래도 이 놈이 피해자를 죽일 아무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아니...이 사람이 지금 누구한테 큰 소리야!"

몸집이 큰 남자는 문을 요란하게 닫으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징역 15년을 선고 받은 그 청년은 지금 3년째 복역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