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홍성필 (2006)

“응, 나야 여보.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밖에서 식사나 할까? 그래, 응. 당신이 거기 스프가 맛있다고 했잖아. 알았어요. 지금이 5시니까 6시 45분에 거기서 봅시다.”

며칠 전부터 망설였던 전화. 집에서 얼굴을 마주 보면서도 미처 말을 꺼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통화는 이처럼 짧게 끝났다.

아직 긴장이 가시지 않은 듯, 안도 반 우려 반의 한숨을 내쉬며 장상철은 전화기를 접고 의자에 걸쳐놓은 윗도리 안주머니 속으로 집어 넣었다.

“부장님, 말씀하셨던 것, 작성해 놓았습니다.”

이런 상철의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통화가 끝나자 부임해 온지 며칠 안 되는 윤 과장이 결재판을 들고 온다.

“어, 그래. 뭐였지?”

마치 꿈속에서 갑자기 현실세계로 돌아와 눈을 뜬 거처럼 깜짝 놀라는 모습에 다른 직원들은 의아했다.

몇 년 동안 장상철을 지켜보았던 그들은 매사에 철저하고 외유내강의 모범과도 같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임원회의에서 쓰실 업무보고와 이동계획서입니다.”

“아, 그래요. 어디 봅시다.”

오른손으로 결재판을 받으며 왼손으로는 계산기를 서랍에서 꺼낸다.

효율을 위해 가급적 두 손을 따로따로 사용하려는 그의 노력을 아는 사람은 적지만, 막상 똑같이 해보려고 하면 이런 동작이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업무보고서와 이동계획서에 나온 수많은 숫자들을 하나하나 확인한 후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니 하품을 하려던 윤 과장이 갑자기 손을 입에 대고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장상철을 쳐다본다.

“아직도 거기 있었어?”

“죄송합니다, 부장님.”

“아냐, 내가 죄송하지. 다음부터 나한테 결재를 받을 때는 서류만 던져주고 돌아가 있어요. 나 혼자 지 멋대로 이것저것 다 해본 다음 알아서 부를 테니까.”

“아, 예…….”

“그리고 이건 아주 잘 해줬어요, 윤 과장, 고마워요.”

“예? 아뇨, 고마우실 것까지야. 아니, 감사합니다.”

당황하는 윤 과장의 모습을 보고 주변 직원들은 소리없이 웃는다.

결재할 때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장상철의 입버릇이다. 언젠가 회식자리에서 부하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직원들이 기안서나 보고서, 그리고 공문 같은 것들을 제대로 만들어 주지 않으면 결국 내가 곤란해지거든. 그런데 다들 잘 해주니 내가 고맙다고 할 수밖에. 안 그런가?”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별명이 있다.

결재와 프리젠테이션의 귀재.

변변한 배경도 학력도 없는 그가 지금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덕이 크다. 자신의 상사가 어떤 자료를 어떻게 해 주길 원하는지. 프리젠테이션에서는 그 내용과 상황에 따라 무슨 프로그램으로 어떤 색깔, 폰트를 써야 하는지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성된 자료를 보며 책상 앞에 앉아서는 몇 번씩 연습을 한 후 회의에 임한다.

이런 모습들이 낯선 사람에게 있어서는 너무 지나치게 보이기도 하나, 조금 지나면 이런 일들을 장 부장 자신이 매우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오늘은 어딘지 모르게 예전 같지가 않다.

“부장님, 오늘 날도 흐린데 회식 어떠세요?”

언제나 다양한 이유를 대는 홍 대리가 오늘도 놓칠세라 술 이야기다.

“야, 이거 정말 미안해. 사실은 오늘 중요한 결재를 좀 받아야 하거든.”

“결재……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전혀 짐작할 수 없어 긴장하는 사람은 강 차장이다.

“아냐아냐. 그런 게 아니라 오늘은 개인적인 결재야. 직속상관을 만나야 하거든.”

‘개인적인 결재’와 ‘직속상관’이라는 말에 어리둥절 하는 남자 직원들이었으나, 눈치 빠른 여직원인 박 대리가 웃으며 말한다.

“모처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하하. 역시 박 대리야. 고마워요.”

 

“이번 정차할 역은 낙성대. 낙성대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전철이 정차하기 전 시계를 보니 6시 35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1시간 가까운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느껴졌다. 머리 속을 하염없이 맴도는 여러 가지 생각들. 하지만 그는 아내를 만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애써 준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이어 밀려오는 고민들을 잊기 위해 계단을 하나씩 세어가며 천천히 올라갔다.

 

“여기에요.”

레스토랑 입구에 들어서자 먼저 와 기다리던 아내가 장상철에게 손을 들어 보인다. 웨이터가 깜짝 놀라 아내 쪽을 힐끔 보더니 상철 쪽을 보고 나서 다시 주방 안으로 들어간다.

“일찍 왔네. 많이 기다렸어?”

“아뇨. 방금 전에 왔어요.”

장상철은 아내 앞에 놓여진 물컵을 보고 말한다. “아닌 것 같은데?”

“사실 얼음이 좀 많이 녹았죠? 시간이 나서 책이라도 읽고 있으려고 조금 일찍 왔어요.”

“요즘 무슨 책을 읽어?”

“그냥 여자들이 읽는 흔한 소설이에요.”

웨이트레스가 왔길래 둘은 항상 즐기던 요리와 커피, 그리고 코코아를 각각 주문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으나 오늘 무슨 일로 외식을 하자고 했는지 아내는 묻지 않았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이런 저런 일들을 두서없이 말하고 난 후 상철은 화제를 바꾸었다.

“당신 혹시 ‘로카르의 법칙’이라고 들어봤어?”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아내는 상철을 바라보았다. 그 호기심이 ‘로카르의 법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질문을 던지는 상철에게 있음은 당연했다.

“글쎄요. 처음 듣는 말 같은데.”

“로카르라는 사람은 프랑스의 법의학자인데, 이 교수의 지론에 의하면 두 물체가 접촉하면 반드시 서로에게 흔적을 남긴다고 한다더군.”

“그게 법의학과 연관이 있나보죠?”

“예를 들어서 범인과 범행현장, 범인과 피해자 서로에게 흔적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래요. 형사들 격언에도 ‘현장 백 번’이라는 말이 있거든. 수많은 증거가 현장에 있으니,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장을 백 번이고 가서 살펴보면 단서가 나온다는 거야.”

“지문이나 흉기 같은 거요?”

“그 밖에도 발자국, 방안에 있는 식물 꽃가루, 카펫 조직, 분비물, 나아가서 향기 같은 것들이 두 물체간에 오간다고 해요. 그런 흔적들이 때로는 범인이 피해자에게, 피해자가 범인에게, 그리고 현장과 범인 사이에도 서로 어떠한 흔적을 남긴다는 뜻이지.”

“재미있네요.”

대화 도중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이윽고 서로 조금은 어색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굳이 범죄나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만남에서도 흔적이 남을까요?”

“난 그렇게 생각해. 당신과 나 사이에도 서로간의 흔적은 많이 남아 있을걸요? 먼저, 우리 결혼반지도 그렇고, 당신이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내가 지난 당신 생일 때 사준 옷이고.”

무심코 말한 상철이었으나, 다시금 생각해보니 지금 아내가 입고 있는 옷은 바로 그 드레스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넥타이도 그렇겠네요.”

고개를 숙여 넥타이를 바라보는 상철. “그렇지.”

“그런데 난 이렇게 생각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들 속에도 많은 흔적이 남아있지 않을까? 당신과 나, 서로의 마음 속에 말이에요.”

아내는 식사하던 손을 멈추고 가만히 상철을 바라보고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며 상철에게 말했다.

“이제는 말해줄 수 있죠?”

어느 정도 ‘다른 용무’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짐작 했을 것은 예상하고 있었으나 막상 기회가 오니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순서로 할까? 서론-본론-결론?”

포크와 나이프를 조용히 내려놓은 후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놓으며 아내는 말한다. “본론-서론으로 하죠. 결론은 제가 말해드릴게요.”

 

“내 흔적을 만나보려고 해요.”

“그렇군요.” 상철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하고는, “예전에 살던 분이요?”

그녀는 상철의 전 부인을 가리킬 때에도 항상 ‘분’이라는 표현을 썼다.

“아니. 난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어요. 본론을 이야기 했으니 이제 서론으로 조금 들어가 볼까?”

상철은 아내를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당신과 함께 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행복’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나의 예전 삶은 육체적 정신적인 피로의 연속이었으며, 어느 한 모퉁이에라도 숨어있으리라 믿었던 ‘행복’은 끝내 찾지 못했지. 하지만 당신을 만나고서는 달라졌지요. 아침에 서랍을 열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접혀진 손수건. 전화를 걸면 내게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식단을 물어보는 당신의 목소리. 식사 후 부엌에서 나는 설거지 소리. 아니, 이런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함이 내 안에, 그리고 당신과 나 사이에 펼쳐져 있는 무한한 공간 속에 가득 차 있어요. 벌써 우리가 함께한 지 5년이 넘어가지만 나는 당신과 함께하게 된 사실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것은 믿어주었으면 해요.”

“알아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정말로.”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어떤 흔적을 말씀하시는데요?”

“내가 아직 철없을 때 만났던 첫사랑. 그 사람과 연락이 되었어요.”

“그 분은 언제 만났던 분이세요?”

“스무 살 때. 대학교 1학년 때였어. 아직 철없을 시절이었지.”

잠시 그 시절을 떠올리는 동안 둘 사이에는 조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래서 그 분과 만나기로 하신 거예요?”

“음. 이렇게 하기로 했어. 당연히 그 사람도 남편이 있으니 서로 상대방에게 사실대로 말을 하고 허락을 받으면 이번 주 일요일에 약속한 장소로 나오기로 했어요.”

“상대방에게 허락을요?”

“물론이지. 서로 바람 피우는 것도 아니고, 철없이 굴 나이도 아니니 최소한 그 정도의 양해는 구하자고 내가 말했어요.”

“정말이요?”

“내가 지금까지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있어요?”

아내는 말없이 웃음을 지었다.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아내는 입을 열었다.

“그럼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어요?”

“뭔데요? 무엇이든 말해봐요.”

“당신이 그 분을 안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일까요?”

“천만에요. 당신이 언짢게 생각하는 건 당연해요.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본 거고,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만나지 않을 생각이에요.”

“정말로요?”

“물론이에요.”

아내는 다시 웃었다.

“좋아요. 그걸 알고 계시면 됐어요. 허락할게요”

“아니, 정말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안 만날 거라두요.”

“아니에요. 허락해드릴게요. 만나세요. 하지만.”

“하지만? 계속 해봐요.”

상철은 불안한 표정으로 재촉했다.

“하지만 제 소원 하나만 들어주세요.”

“그래요. 어서 말해봐요.”

“우선 내일 저랑 같이 잠깐 외출 좀 해요.”

“그러지. 내일은 토요일이고 일정도 없으니 그렇게 합시다. 그런데 정말 허락해 주는 거예요?”

“그렇다니까요. 이상해요?”

“고마워요, 여보. 그러나 이것만은 기억해주었으면 해요. 만약 당신이 첫사랑과 만나겠다고 하면, 나는 허락해줄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내는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알았어요. 기억해둘게요.”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상철은 집을 나섰다.

둘은 서로 팔짱을 끼고 집 앞 거리를 걸었으나 아내는 행선지를 말하지 않았으며, 상철도 묻지 않았다. 아내의 발걸음은 근처에 있는 대학 후문 쪽으로 향했다.

만추. 이제 가을도 저물어갈 무렵. 거리는 은행잎으로 덮여 있었으며, 지금도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진눈깨비처럼 떨어진다.

은행잎을 보자 아내는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을 풀고 흩날리는 은행잎 사이로 뛰어들었다.

“여보, 뭐하세요. 저 좀 도와줘요.”

“응? 뭘?”

“은행잎이요. 어서 잡아봐요.”

“은행잎이야 온 천지강산에…….” 말을 하다가 아내의 모습을 보니 떨어지는 낙엽을 따라 사춘기 소녀처럼 환호성을 내며 뛰어다녔다. 아내는 밑에 떨어진 낙엽이 아닌, 땅에 닿지 않은 은행잎을 잡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낙엽 몇 개를 얻고 나서 상철과 아내는 다시 팔짱을 낀 채로 대학 후문을 통해 순환도로를 따라 정문으로 나오고는 고갯길까지 걸었다. 결혼 전 아내와 함께 몇 번 걸은 길이긴 하나, 조금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상철의 ‘흔적’과도 함께 걸어간 적이 있었기 때문일까. 거리는 매우 멀었으나 모처럼 해맑은 아내 덕분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여보, 이것 받으세요.”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설 채비를 하고 있자 아내가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이게 뭐야?”

“나가서 혹시 기다리는 시간에 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 참.” 무언가가 생각난 듯이 상철은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어제 소원이 있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아직 듣지 못한 것 같은데.”

아내는 조금 망설이더니 말했다.

“그 분 만나기 전에 이 책을 펼쳐보세요. 거기에 제 소원이 적혀있어요.”

상철이 책을 받아보니 과연 안에 작은 종이 같은 것이 사이에 끼어져 있는 듯했다.

“알았어요. 그럼 다녀 올게요.”

“그래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아내는 웃으면서 상철을 배웅했다.

 

신촌 연세대학교 교문 앞.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와 같은 장소에 상철은 서 있었다.

분명 그 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다. 연애, 사랑이라는 단어를 그저 대중가요나 소설에서 밖에 볼 수 없었던 상철에게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만남은, 아직 스무 살을 앞두고 있던 그에게 우연히 찾아온 만남은 서로에게 많은 안타까움을 남겨주고 말았다.

그녀가 오기 전, 상철은 그 때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던 책을 펼쳐보기로 했다. 아내의 소원이 적혀있다는 ‘나의 라임오랜지나무’. 그저 막연하게 사고 싶은 가방이나 액세서리명이라도 적혀있을까 하고 천천히 책을 펼쳐보았다. 무엇인가가 끼워져 있던 페이지는 쉽게 펼쳐졌다. 그 곳에는 바로 전날 대학 후문에서 얻었던 은행잎이 한 장 들어있었으며 잎사귀 위에는 아내의 글씨로 다섯 글자가 적혀있었다.

 

약속시간이 되었다. 상철은 눈을 들고 바로 앞 횡단보도를 보았다. 항상 약속시간을 잘 지키던 그녀는 아마도 이번에 신호가 바뀌면 건너올 것이다.

파란 신호등.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이 쪽으로 몰려온다. 마지막으로 헤어지고 벌써 20여년이 흘렀다.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상철의 눈앞에는 아내의 얼굴과 은행잎에 적혀있던 글귀가 아른거렸다. 아내의 소원.

‘지금 그대로’